[공감]지금 머무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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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4-18 08:28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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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주변에 안부를 전할 때면 제주에 사니까 어떤지 질문받곤 한다. 부럽다고 했고, 타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선택이 용기 있다고도 했다. 그럴 때면 어떻게 답해야 맞을지 고민되었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 이래 신규 교원 임용공고가 거의 나지 않아 온 세부 전공을 가진 난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사실 다 좋았다. 도심 한복판이나 산골, 혹은 강가나 항구였어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갔을 것이다. 그건 생계의 문제였지 선택이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간절했던 대상은 거주 조건보다는 일할 자리였다.
지역의 숨은 명소를 추천해달라 청할 때도 답하기 쉽지 않았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거나 맛 좋은 빵집에 찾아가는 정도야 혼자서 곧잘 해도 누가 먼저 제안하기 전에 스스로 나들이를 계획할 부지런함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토요일 아침 눈 뜨니 날이 화창하다 하여 ‘김밥 싸서 시외버스 타고 목장 다녀올까’ 식의 설렘이 솟지 않는 것이다. 다시 드러누워 밀린 잠을 청할 따름이다. 하지만 한갓진 중산간에 자리 잡은 교정 안에서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는 제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과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내니 말이다. 각별한 곳 중 하나가 ‘노천극장’이라 불리는 작고 낡은 무대 앞 잔디밭이다. 학생들이 한창 오가는 한낮엔 활기차서, 벤치에 걸터앉은 젊은 연인이 밀어를 속삭이는 한밤엔 달콤해서 좋았다. 해 쨍하면 반짝거려서, 비 오면 싱그러워서, 안개 내려앉으면 신비로워서 좋았다.
교내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는 취미도 생겼다. 그중 본관 뒤편의 큰 나무들이 특히 마음에 든다. 식물학적으론 활엽수라는 사실 말곤 아는 바 없으나 문학적으론 떡갈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이름이 어울릴 법한 나무다. 연둣빛 새잎이 돋는 봄엔 청신하고 잎사귀 무성한 여름엔 싱그러우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엔 넉넉하다. 겨울 되어 가지가 앙상해지면 나름의 고아한 멋이 난다. 나란히 선 그들 가운데 두 번째 가로등 옆의 것이 ‘내 나무’다. 물론 학교 당국의 허락을 얻지 않았으니 내 나무임은 비밀이다.
눈보라 심하게 일던 겨울 아침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 하면 과장이겠지 생각한 순간 테이크아웃 커피를 쥔 손이 휘청했다. 코트 소매에 묻은 커피를 털어내려다 발아래 살얼음을 밟고 꽈당 넘어졌다. 부끄러운 장면을 목격한 사람 없나 두리번거렸더니 저기 나무 한 그루가 ‘괜찮아?’ 묻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잔가지 하나 흔들리지 않고 여일하게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푸른 핏줄 솟아난 곧고 단단한 팔목으로 변해 추위에 부르튼 손을 잡아 끌어올려 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 나무는 내 나무가 되었다.
사회적 정의가 치유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
공감의 반경
또 다른 각별한 장소는 원형운동장이다. 밤 되면 몹시 고요해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쳐보고 싶어진다. 임금 귀에 관한 기밀을 품고 있진 않으나 늦은 시각 종종 그곳을 걷는다. 축제 기간 아닌 평상시엔 작은 조명등 몇 개만 켜두어 캄캄하지만 의외로 무섭진 않다. 야간 농구 하거나 배드민턴 치는 이들이 늘 몇몇 있으니까. 짙은 어둠 때문에 별이 한층 또렷하여 맑은 날 고개 들면 머리 위에서 쨍그랑 소리 날 듯 반짝인다. 형님인 별들과 누님인 달, 어머니 대지와 그 품에 안긴 나.
아말피 해안도 피레네산맥도 심지어 오름도 아니고 고작 교정을 걸으며 대지 운운하다니 핀잔받을 법하다. 하지만 아말피나 피레네는 일생 동안 갈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한편 노천극장 잔디밭과 본관 뒷길은 바로 곁에 있으니까. 또 이젠 지병으로 경사진 데선 몇 발짝 못 떼고 멈춰 서서 숨 고르기 해야 하지만 평평한 운동장은 여전히 걸을 수 있으니까. 도심 한복판이든 산골이든 강가든 항구든, 그대가 지금 머무는 그곳에도 당국은 모를 그대의 나무가, 그대만의 아말피와 피레네가 있었으면 한다.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최고령 목련이 만개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지난 12일 한라산에 자생하는 최고령 목련의 만개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최고령 목련은 한라산 해발 1000m 지점에 자생하고 있으며 300년 수령으로 추정된다. 목련은 목련과에 속하는 대표 식물로, 한국과 일본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한라산 1000m 이하의 낙엽활엽수림대에서 드물게 자란다. 그마저도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희귀식물이다.
가로수와 정원수로 흔히 관상용으로 볼 수 있는 목련은 중국이 원산지인 백목련이다. 한라산 자생 목련과 백목련은 흰색의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자생 목련은 꽃의 아래쪽에 연한 붉은 빛이 돌고 한 개의 어린잎이 달리며 꽃이 활짝 벌어진다는 점에서 백목련과 구별된다.
목련은 봄소식을 전하는 나무일 뿐만 아니라 의약품과 향장품으로서 산업화 가치도 높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자생 목련의 보존과 보급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체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접목과 파종을 통해 400본의 유묘도 확보했다.
임은영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사는 자생 목련은 개체군이 적고 어린나무 발생 역시 적어 시급히 보존해야 하는 제주지역의 귀한 식물이라면서 후계림 조성과 활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딸이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내게 했다. 딸한테 세상의 진보를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듣고 있던 상담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섭씨가 어머니께 가르침을 줄 필요는 없어요. 깜짝 놀랐다. 엄마와 페미니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다. 엄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의무는 나에게 없다. 그 깨달음 이후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총선이 끝나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모두 ‘나중에’로 미루고 치른 선거를 목격한 후유증이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간에서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 와중에 심상정 의원이 지역구에서 크게 패하고 결국 정치 은퇴를 선언하자, 나도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고등학생 시절, 심상정이라는 국회의원이 옆 동네에서 지역구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결국에는 4선 의원이 된 그를 나는 꽤나 좋아했다. 마주치는 유세 차량에 웬 모르는 아저씨가 아니라 우리 엄마처럼 생긴 후보가 타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심상정을 보고 자랐기에 정치인의 모습을 여성으로 그려낸 고양시의 청년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크게 실망한 일이 있었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박 여사라 부르며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서였다. 질문 및 답변 시간에 객석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 발언은 여성 혐오적이다. 박 전 대통령의 여성됨을 짚어 멸칭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사과할 기회를 드리겠다. 심 후보는 발언을 취소하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래도 화가 다 풀리지는 않았다.
도끼눈을 뜨고 대선을 지켜보는데,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설거지는 여성의 일이라고 발언한 데 대한 지적이 나왔다. 허허 웃는 남자 후보들 사이에서, 심 후보는 농담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단호하게 짚었다. 대한민국 모든 딸들에게 이 자리에서 사과하십시오. 그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토론회에서는 심 후보가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타 후보들의 혐오 발언을 지적했다. 그제야 나는 심상정을 온전히 용서하게 되었다. 그가 나를 모욕하는 이들에 맞서 사과를 받아내는 정치인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심상정 캠프에 들어갔다. 5년 전 토론회에서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유세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선거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후보가 일정을 취소하고 연락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며칠 후 돌아온 그에게 나는 또 화가 나서 편지를 썼다. 같이 일하는 선거 노동자들에게도 사과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번에도 역시 답장이 왔다. 정성껏 지적하고 화내줘서 고맙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렇게 심상정에게는 화가 많이 났으며, 몇번이나 용서를 빌게 했을까. 엄마를 가르치는 역할에 부담을 갖고 살았다는 점을 깨달은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인 심상정에게 고마운 마음만큼 의무감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가 여성과 소수자의 편에 서준 만큼 나도 그가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심상정은 은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도 사과했다. 빛나는 퇴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패배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에게 그는 언제든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준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는 심상정에게 진 빚을 내려놓게 되었다. 다 갚아서가 아니다. 사실 어떻게 하든 갚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건 내가 진 빚이 아니니.
지역의 숨은 명소를 추천해달라 청할 때도 답하기 쉽지 않았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거나 맛 좋은 빵집에 찾아가는 정도야 혼자서 곧잘 해도 누가 먼저 제안하기 전에 스스로 나들이를 계획할 부지런함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토요일 아침 눈 뜨니 날이 화창하다 하여 ‘김밥 싸서 시외버스 타고 목장 다녀올까’ 식의 설렘이 솟지 않는 것이다. 다시 드러누워 밀린 잠을 청할 따름이다. 하지만 한갓진 중산간에 자리 잡은 교정 안에서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는 제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과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내니 말이다. 각별한 곳 중 하나가 ‘노천극장’이라 불리는 작고 낡은 무대 앞 잔디밭이다. 학생들이 한창 오가는 한낮엔 활기차서, 벤치에 걸터앉은 젊은 연인이 밀어를 속삭이는 한밤엔 달콤해서 좋았다. 해 쨍하면 반짝거려서, 비 오면 싱그러워서, 안개 내려앉으면 신비로워서 좋았다.
교내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는 취미도 생겼다. 그중 본관 뒤편의 큰 나무들이 특히 마음에 든다. 식물학적으론 활엽수라는 사실 말곤 아는 바 없으나 문학적으론 떡갈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이름이 어울릴 법한 나무다. 연둣빛 새잎이 돋는 봄엔 청신하고 잎사귀 무성한 여름엔 싱그러우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엔 넉넉하다. 겨울 되어 가지가 앙상해지면 나름의 고아한 멋이 난다. 나란히 선 그들 가운데 두 번째 가로등 옆의 것이 ‘내 나무’다. 물론 학교 당국의 허락을 얻지 않았으니 내 나무임은 비밀이다.
눈보라 심하게 일던 겨울 아침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 하면 과장이겠지 생각한 순간 테이크아웃 커피를 쥔 손이 휘청했다. 코트 소매에 묻은 커피를 털어내려다 발아래 살얼음을 밟고 꽈당 넘어졌다. 부끄러운 장면을 목격한 사람 없나 두리번거렸더니 저기 나무 한 그루가 ‘괜찮아?’ 묻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 잔가지 하나 흔들리지 않고 여일하게 서 있었다. 나뭇가지가 푸른 핏줄 솟아난 곧고 단단한 팔목으로 변해 추위에 부르튼 손을 잡아 끌어올려 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 나무는 내 나무가 되었다.
사회적 정의가 치유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
공감의 반경
또 다른 각별한 장소는 원형운동장이다. 밤 되면 몹시 고요해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외쳐보고 싶어진다. 임금 귀에 관한 기밀을 품고 있진 않으나 늦은 시각 종종 그곳을 걷는다. 축제 기간 아닌 평상시엔 작은 조명등 몇 개만 켜두어 캄캄하지만 의외로 무섭진 않다. 야간 농구 하거나 배드민턴 치는 이들이 늘 몇몇 있으니까. 짙은 어둠 때문에 별이 한층 또렷하여 맑은 날 고개 들면 머리 위에서 쨍그랑 소리 날 듯 반짝인다. 형님인 별들과 누님인 달, 어머니 대지와 그 품에 안긴 나.
아말피 해안도 피레네산맥도 심지어 오름도 아니고 고작 교정을 걸으며 대지 운운하다니 핀잔받을 법하다. 하지만 아말피나 피레네는 일생 동안 갈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운 한편 노천극장 잔디밭과 본관 뒷길은 바로 곁에 있으니까. 또 이젠 지병으로 경사진 데선 몇 발짝 못 떼고 멈춰 서서 숨 고르기 해야 하지만 평평한 운동장은 여전히 걸을 수 있으니까. 도심 한복판이든 산골이든 강가든 항구든, 그대가 지금 머무는 그곳에도 당국은 모를 그대의 나무가, 그대만의 아말피와 피레네가 있었으면 한다.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최고령 목련이 만개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지난 12일 한라산에 자생하는 최고령 목련의 만개를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최고령 목련은 한라산 해발 1000m 지점에 자생하고 있으며 300년 수령으로 추정된다. 목련은 목련과에 속하는 대표 식물로, 한국과 일본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한라산 1000m 이하의 낙엽활엽수림대에서 드물게 자란다. 그마저도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희귀식물이다.
가로수와 정원수로 흔히 관상용으로 볼 수 있는 목련은 중국이 원산지인 백목련이다. 한라산 자생 목련과 백목련은 흰색의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자생 목련은 꽃의 아래쪽에 연한 붉은 빛이 돌고 한 개의 어린잎이 달리며 꽃이 활짝 벌어진다는 점에서 백목련과 구별된다.
목련은 봄소식을 전하는 나무일 뿐만 아니라 의약품과 향장품으로서 산업화 가치도 높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자생 목련의 보존과 보급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체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접목과 파종을 통해 400본의 유묘도 확보했다.
임은영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연구사는 자생 목련은 개체군이 적고 어린나무 발생 역시 적어 시급히 보존해야 하는 제주지역의 귀한 식물이라면서 후계림 조성과 활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딸이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내게 했다. 딸한테 세상의 진보를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듣고 있던 상담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렸다. 미섭씨가 어머니께 가르침을 줄 필요는 없어요. 깜짝 놀랐다. 엄마와 페미니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다. 엄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의무는 나에게 없다. 그 깨달음 이후 삶이 한결 가벼워졌다.
총선이 끝나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모두 ‘나중에’로 미루고 치른 선거를 목격한 후유증이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꼈던 공간에서 세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 와중에 심상정 의원이 지역구에서 크게 패하고 결국 정치 은퇴를 선언하자, 나도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고등학생 시절, 심상정이라는 국회의원이 옆 동네에서 지역구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결국에는 4선 의원이 된 그를 나는 꽤나 좋아했다. 마주치는 유세 차량에 웬 모르는 아저씨가 아니라 우리 엄마처럼 생긴 후보가 타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심상정을 보고 자랐기에 정치인의 모습을 여성으로 그려낸 고양시의 청년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2017년 제19대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크게 실망한 일이 있었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박 여사라 부르며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서였다. 질문 및 답변 시간에 객석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 발언은 여성 혐오적이다. 박 전 대통령의 여성됨을 짚어 멸칭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사과할 기회를 드리겠다. 심 후보는 발언을 취소하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래도 화가 다 풀리지는 않았다.
도끼눈을 뜨고 대선을 지켜보는데,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설거지는 여성의 일이라고 발언한 데 대한 지적이 나왔다. 허허 웃는 남자 후보들 사이에서, 심 후보는 농담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며 단호하게 짚었다. 대한민국 모든 딸들에게 이 자리에서 사과하십시오. 그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토론회에서는 심 후보가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타 후보들의 혐오 발언을 지적했다. 그제야 나는 심상정을 온전히 용서하게 되었다. 그가 나를 모욕하는 이들에 맞서 사과를 받아내는 정치인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심상정 캠프에 들어갔다. 5년 전 토론회에서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유세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선거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후보가 일정을 취소하고 연락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며칠 후 돌아온 그에게 나는 또 화가 나서 편지를 썼다. 같이 일하는 선거 노동자들에게도 사과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번에도 역시 답장이 왔다. 정성껏 지적하고 화내줘서 고맙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렇게 심상정에게는 화가 많이 났으며, 몇번이나 용서를 빌게 했을까. 엄마를 가르치는 역할에 부담을 갖고 살았다는 점을 깨달은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인 심상정에게 고마운 마음만큼 의무감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가 여성과 소수자의 편에 서준 만큼 나도 그가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심상정은 은퇴를 선언하는 자리에서도 사과했다. 빛나는 퇴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패배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에게 그는 언제든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준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는 심상정에게 진 빚을 내려놓게 되었다. 다 갚아서가 아니다. 사실 어떻게 하든 갚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건 내가 진 빚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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