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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눈 떠보니 부자’됐던 울산의 시대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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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4-01 21:13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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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로 나라가 휘청이던 1990년대 말, 울산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울산의 조선 산업은 10년 초호황기의 초입에 있었다. 수출 주도 3대 산업(자동차·조선·석유화학)이 호황을 맞자 그저 근면성실하게 일하던 울산 사람들은 ‘눈 떠보니 부자’가 돼 있었다. 2017년 서울에 1위를 빼앗기기 전까지 울산은 근 20년 동안 한국에서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렇게 잘나가는 울산도 대한민국 모든 지방 도시가 겪고 있는 지방소멸 위기를 피해가진 못하고 있다. 제조업 성장 둔화와 청년 중심의 급속한 인구감소로 인해 울산 동구는 전국 소멸위기지역 59곳 중 광역시 단위로는 유일하게 위기지역으로 포함돼 있다.
산업도시 울산은 지속 가능할까?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경남 거제 조선업 중심 노동자 가족 이야기를 다뤘던 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가 이번에는 울산에 질문을 던졌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책은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이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훑고, 울산을 중심으로 지방 거점 산업도시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해 말한다. 울산은 이촌향도 이주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와 지역 불균형의 역사 그 자체로, 울산을 탐구하다 보면 한국의 산업도시,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책이 출발했다.
책은 울산이 눈부시게 경제 성장을 일궈낸 지난 60년 역사를 훑는다. 정부 공식 기록에 따르면 산업도시 울산의 시작은 1962년부터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1962년 1월13일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달 27일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공포했다. 울산은 북·서·남이 500~1000m급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며, 태화강으로부터 공업용수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대규모 공업센터로 낙점될 만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한 입지조건만이 울산을 산업도시로 만든 전부는 아니었다. 울산은 일제강점기 때 태평양 전쟁을 위한 석유 비축기지로 설계됐던 역사가 있는데, 해방 이후에 그 밑천으로 정유 공장을 지으려는 군사정부와 기업가들의 고려가 계속됐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구매 또한 울산 개발에 이해관계가 있는 남궁련, 김연수 등의 재벌기업가와 박정희 정부의 결단이 맞물리면서 울산 공업센터 구축에 속도가 붙었다.
(안 될 것 같던 사업들을) 실제로 실행했던 모험 자본가 정주영의 현대, (중략) 잠을 설치면서 눈썰미를 가지고 도면과 기술을 베껴 오던 엔지니어들, 저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안전 요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배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어 냈던 울산의 노동자들이 최종적으로 더해져 지금의 산업도시 울산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울산의 위기를 ‘한국 제조업 위기론’이라는 큰 틀 속에서 설명한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지탱되는 국가다. 제조업 세계 5대 강국일 뿐 아니라 국민총생산(GDP)의 27.1%(2020년 기준)를 제조업을 통해 번다. GDP 중 제조업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국가는 아일랜드뿐이다.
저자는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기술혁신’ 같은 키워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울산 같은 산업도시가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데 있다고 짚는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제조 대기업은 생산 현장과 본사를 같은 지역에 두었다. 생산직 노동자와 설계 엔지니어는 현장에서 협업하면서 생산방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생산직 노동자의 높은 숙련도는 기술로서 존중받았다.
하지만 기업 연구소들은 점차 ‘천안 분계선’을 넘어 북상하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전한 후 연구소와 밀접한 설계 부문 등이 수도권으로 따라 올라가는 경향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20여년에 걸쳐 강화됐다. 이를 ‘공간 분업’이라고 한다. 저자는 산업혁명 중심지였던 영국의 맨체스터 지역에서 관찰됐던 ‘공간 분업’이 시차를 두고 울산에서도 재현됐으며, 울산 발전의 동력이 됐던 기업인·관료·엔지니어·노동자·지역민들 간의 ‘생산성 동맹’이 와해됐다고 설명한다.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제조업체는 모듈화, 자동화를 도입하고 노동자의 중요도를 점차 줄이는 ‘숙련 절약형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적대적 노사관계와 노동자에 대한 불신은 생산직을 배제하고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두는 혁신을 택하게 만들었다. 이는 산업도시에서 일하는 정규직 숙련공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수도권 인재 쏠림 현상으로 인해 이제 공장까지도 전부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2019년 SK 하이닉스 공장 유치전에서 기업이 경북 구미 대신 경기 용인을 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산기지로의 전락은 여수, 울산, 포항 등 지방 거점 산업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위기일 것이다. 문제는 울산이 자체 역량으로 위기를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5년 119만명을 정점으로 울산에서는 모든 세대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 특히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다.
저자는 ‘산업 가부장제’라는 개념으로 청년 인구 유출에 대해 들여다본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울산 지역 주력 산업인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비철금속 등 중화학공업은 여성을 채용 단계부터 배제한다. 현대중공업(조선업)의 성비는 97 대 3, 현대자동차의 성비는 94 대 6이다. 울산은 서비스 산업 비중이 전국 평균에 비해 24% 작아 제조업 외에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울산의 여성 임금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전국 평균보다 12만원 낮고, 창원보다 2만원 낮다. 남성·생산직·대기업 정규직이 중심이 된 1인 생계 부양자 모델은 이제 작동하기 어렵다.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산업 도시에서 대졸자가 원하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구직 수요와 구인 수요 간의 격차인 ‘구조적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청년과 여성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저자는 산업도시 울산과 동남권의 창원과 거제에서 청년이 비전을 찾지 못해 서울로 떠나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산업 도시 전체의 위기를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 것일까. 책의 후반부에서는 해외의 여러 선발 사례들을 검토해보며 참고할 만한지 따져본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 도시였던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1970년대까지 철강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사례를 들여다본다.
두 도시 모두 주력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전환의 관점에서 적극 대응하지 못해 도시 자체가 쇠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피츠버그는 도시 재활성화에는 성공했지만, 제조업 비중이 크게 떨어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올 샤넬’과 ‘에코주의’를 매치한 중산층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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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숙련 노동자가 지역을 지키면서 지역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고진로 전략’을 제안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제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부산·울산·경남 등 인근 대도시끼리 교통 연결망과 물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연구소와 대학 등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하는 것 등이다.
김경수 전 경남 도지사가 정책으로 내세웠던 동남권 메가시티를 설득력 있는 정책적 형태로 소개하는데, 요지는 청년과 여성이 지역에 머무를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만이 위기를 돌파할 해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평범한 노동자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의 꿈을 포기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울산에서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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