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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5년 만에 영화 봤지…우리 할아버지 살았으면 같이 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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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4-01 16:12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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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낮 12시 류경자씨(74)는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 집에서 영화관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5분 거리 밖에 안 걸린다. 류씨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거라 기대가 컸다면서 아침이 자고 있던 남편도 일찍 깨웠다고 했다. 아들도 얘기 듣더니 차로 태워다 준다고 하더라고. 기름값 아깝게 뭐하러 그래? 그냥 전철 타고 왔어. 류씨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찾은 ‘영화관’은 서울 마포구청 2층 대강당이었다. 마포구는 2011년부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영화 상영을 해왔다. 2018년부터는 ‘마실 영화관’으로 정착했다. 대상도 나이 제한 없이 문화 소외계층 전체로 확대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동안 문을 열지 못했던 마실 영화관은 2022년 말 다시 시작돼 지난해 총 7회에 걸쳐 주민 인스타 팔로우 구매 1200명이 다녀갔다. 올해 첫 개관일인 이날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10년 전 개봉 영화 <명량>을 상영했다.
마실 영화관을 찾은 어르신들은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건축일을 하던 남편이 일감을 잃었다는 고경숙씨(66)는 그때 집까지 경매로 넘어갔다. 일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면서 영화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고씨는 20년 넘게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지난해부터 학력인정 평생 학교인 일성여고에 다닌다. 그는 공부하느라 전보다 더 바쁠 때도 있지만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이날 고씨와 함께 온 수십 명의 ‘늦깍이 학생’들은 가운데 앞 좌석에서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단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에 서너 번 온 적 있다는 이종열씨(82)는 주위에서 ‘멋쟁이 할아버지’로 불린다. 챙이 있는 검정 모자를 쓰고 온 이씨는 영화는 물론이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스포츠 댄스도 20년을 했다면서 경기장에 가서 프로농구나 프로축구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쟁 영화를 보면서 60년 전 군 생활 할 때가 떠올랐다면서 한국전쟁 이후에 군에 가서 최전방 복무를 했는데, 야밤에 훈련할 때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고 말했다.
작은 행복의 틈에서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었다. 3년 전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팽영주씨(75)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올 때가 살면서 제일 힘들었다면서도 살아있었으면 같이 왔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내가 휠체어를 밀어줬거든. 그 모습이 눈에 선해. 지금은 집에 혼자 들어가면 외로울 때가 많지.
어르신들은 오늘처럼 재밌게 살다 가는 게 남은 소원이라고 했다. 김덕영씨(84)는 영화를 본 지 4년도 더 넘은 것 같다면서 평소에는 집 근처 공원을 돌아다니거나, 적적할 때는 노인정에 가서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황영주씨(80)는 노인정에 다녀도 성격상 사람들이랑 잘 친해지지 못해서 혼자 왔다고 했다. 황씨는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바라는 게 없다면서 편안하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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