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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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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30 21:15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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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들 얼굴에 또렷한 고문 흔적을 보면서 2011년 노르웨이 연쇄 테러 인스타 팔로워 사건 범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생채기 하나 없던 얼굴이 떠올랐다. 구타나 고문 없이 정식 재판도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이라고 테러범에 관대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브레이비크가 희생자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처형되길 원했다. 사람들은 변호사에게도 분노를 터뜨렸다.
변호사 예이르 리페스타드가 쓴 게 <나는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했나>(그러나)다. 재판 전후 상황과 소회를 담은 책에서 그는 ‘희대의 흉악범’의 변호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평판 등을 우려하며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리페스타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 당원이었고, 브레이비크가 우퇴이아섬에서 무차별 학살 대상으로 삼은 게 노동당 캠프에 온 청소년들이다. 간호사인 아내가 브레이비크가 병원에 실려 왔다면 누구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돌봤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의 직업 아닌가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다. 한국 헌법도 제12조 4항에도 이 권리가 있다.
성범죄자들 변호 이력으로 총선 후보에서 사퇴한 조수진을 옹호하는 근거 중 하나가 이것이다. 둘은 같은 가치를 추구한 변호사인가. 리페스타드는 심문·구금·재판 때 법적 권리를 지켜주려 했을 뿐이다. 이 흉악범에게 범행이 혐오스럽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죽은 청소년들의 이상은 곧 자기 이상이었다고도 말했다. 메가폰 노릇도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수진의 ‘강간 통념’ 활용 홍보는 성범죄자들의 메가폰 노릇을 자처한 것과도 같다.
지금 총선판엔 ‘메가폰들’과 ‘조수진들’이 널렸다. 이들이 때때로 많은 돈을 받고 ‘힘써 도와주려는’ 피고인이나 용의자의 범죄 종류와 정도 차만 있을 뿐이다. 민주당 법률위원장을 지낸 양부남은 ‘전세사기 빌라왕’을 변호했다. 갭투자 등이 문제가 된 또 다른 검사 출신 김기표나 민변 출신 이영선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대체로 부자이거나 은행에서 수십억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박은정 남편 이종근이 검사장을 퇴임하고, 개업한 지 1년 만에 수십억의 재산을 늘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는 1조원대 피해액을 낸 다단계사기 의혹을 받는 업체 대표도 변호했다.
탈법 경계를 오가는 이들도 있지만, 변호 활동 자체를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다. 이들의 변론 활동이 리페스타드의 원칙보다 비호에 가깝다는 점도 분명하다. ‘(돈 받고) 조력받을 권리’에 부응하며 홈페이지에 ‘성공 사례’ ‘고객만족 사례’를 쌓아 올리며 떵떵거리고 살면 될 일이다.
그랬던 이들이 자신을 내세우고, 빛내는 데는 능하다. 인권, 민주, 진보의 활동 이력도 별로 보이지 않는 법조인들이 ‘그린워싱’ 같은 ‘진보워싱’ ‘인권워싱’ ‘민주워싱’ ‘민변워싱’으로 공공 영역으로 들어온다. 한쪽 진영을 택하거나 진영의 수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성범죄, 다단계사기, 노동착취기업 변호 경력 등을 사함’이라는 면죄부를 받으면서 ‘국민을 위해 일할 공복’의 지위에도 오른다.
이들의 활동은 ‘법조 카르텔’과 연결된다. 돈과 권력으로 굴러가는 ‘법조 카르텔’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窓) 하나가 김앤장이다. 대법원장 후보자였던 이균용의 아들이 김앤장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 정권 국정원 기조실장 김남우도 이곳 출신이다. 한동훈 아내 진은정도 김앤장 외국변호사다. 윤석열이 대선 후보 시절 김앤장 출신 강한승의 상가를 찾았다. 강한승은 ‘취업제한 블랙리스트’로 악명 높은 쿠팡의 대표이사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사측 변호를 맡은 게 김앤장이고, 재판부 배석판사 2명도 김앤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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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의 열렬한 대변자인 김앤장은 진영 간 연결고리다. 민주당은 한덕수가 윤석열 정권 총리가 될 때 성차별적 용어를 동원해 ‘김앤장의 얼굴마담’이라고 비난했지만, 한덕수는 김앤장 고문을 지낸 뒤 노무현 정권으로 들어가 총리까지 했다. 문재인 정권 때도 김앤장 출신들이 여럿 청와대에 들어갔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지낸 인스타 팔로워 김한규도 여기 출신이다. 기업과 자본의 ‘조력받을 권리’를 위해 뛰는 다른 대형 로펌을 포함하면 리스트는 길어진다.
‘법권 정치’, 즉 ‘법정(法政)’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검사와 변호사, 법대 교수 출신을 각각 수장으로 둔 정당들이 프레데터, 에이리언, 고질라가 싸우듯 맹렬한 기세로 다투지만, 이들 정당의 구성원들은 부동산, 가상통화, 주식, 이중국적, 미국 유학 같은 키워드로 동맹한다. 서로 진보니 보수니, 수구니 극좌니 하지만 가덕도신공항이나 메가시티 같은 토건 이슈에서 연대한다. 차별, 젠더, 노동, 성별, 장애, 기후, 생태, 주거 같은 세상의 근본 문제의 접근법도 비슷하다.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두고 민주당은 ‘미안해’ ‘나중에’라는 말은 했는데, 요즘엔 이 말조차 하지 않는다. 총선판은 한국 문제가 정권, 정파, 진영 문제가 아니라 법정 체제라는 걸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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