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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간판 속 한국어 ‘짬뽕’이면 어때,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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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31 05:17 조회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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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코리아타운 곳곳서 마주치는 한국어영어 정관사 ‘the’ 비교 표현 ‘더’로 쓰는 등알파벳과 섞인 한글, 말장난인 듯 묘한 조화
각양각색 인종·민족 한데 넘치는 미국에선한국 콘텐츠로 ‘언어 관심’ 높이는 것 우선한글 우수성·순수성 고집은 ‘출구’ 아니다
아이 돈 드링크 커피, 아이 테이크 티, 마이 디어 … 아임 언 잉글리시맨 인 뉴욕.
이것은 영어 노래인가, 한글 노래인가? 질문부터 틀렸다. 영어는 언어이고 한글은 글자이니 영어로 만들어진 노래의 가사를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는 엄연히 다른데 유독 우리가 많이 헷갈린다. 한국어는 우리만 쓰는 고유한 언어이고, 한글은 그 언어를 적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혼동이 될 만도 하다. 이러한 혼란은 해외에 나가면 훨씬 더 커진다. 어쩌다 마주친 한글이 곧 한국어로 받아들여진다. 엉터리 발음과 표기로 된 한국어도, 번역기의 시원찮은 번역으로 만들어진 한국어 문구도 반갑다.
지난 30여년간 한국어 방언만 찾아다니다 미국 최고의 도시 뉴욕의 최대 번화가인 맨해튼 한복판에 서서 갈 길을 잃는다. 한국인과 한국어만 접해왔는데 이곳엔 각양각색의 인종, 민족, 국가의 사람들과 그만큼 다양한 말들이 넘쳐난다. 한국인과 한국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말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단 일주일 동안 뉴욕 사람이지만 32번가 코리아타운에 점점이 박혀 있는 한글,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한국어를 통해 세계 속 한국어의 자리를 가늠해본다.
한국어와 한글
‘국어’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고 우리끼리는 그 대상이 분명하지만 나라 밖에 서는 순간 이 말은 이상해진다. 일본과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대만에서도 쓰이는 ‘국어(國語)’는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 그러니 정확하게 쓰자면 ‘한국어’라고 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어를 적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는 ‘국문’이 아닌 ‘한글’이어야 한다. 한글로 영어의 말소리를 적었다고 그것이 한국어인 것은 아니다. 뉴욕에 사는 영국인 스팅의 ‘잉글리시맨 인 뉴욕’의 노랫말도 한글로 적었을 뿐 영어이다.
그러나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가기 위한 기차역에서 만난 기차표 자판기의 한글은 훌륭한 한국어 방언 제보자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함께 언어 선택 메뉴에 ‘中文, 日本語, 한글’이 올라 있다. 여기에서도 문장을 뜻하는 ‘文’과 말을 뜻하는 ‘語’, 그리고 글자를 가리키는 ‘한글’이 뒤섞여 있지만 그것보다 왜 동아시아 세 나라의 말이 지원되는지가 더 궁금하다. 세 언어의 위상 혹은 우수성 때문에? 이런 ‘국뽕’에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철저하게 상업적 이익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한·중·일의 문자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한·중·일 삼국은 문자 역사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자 보물창고이다. 가장 오래된 문자 유형인 뜻글자 한자가 세 나라에서 공유되어왔고 공용되고 있다. 소리글자의 첫 단계인 음절문자가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고 소리글자가 극한까지 발전해 글자가 소리까지 보여주는 한글이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집트 문자와 수메르 문자의 영향을 받아 페니키아인이 만든 알파벳이 전 세계에 걸쳐 가장 널리 쓰이고 있지만 문자의 살아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 한·중·일 삼국의 독특한 문자는 그래서 색다른 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세는 영어를 비롯한 인도 유럽 어족과 이 말을 기록하기 위한 알파벳이다. 사용자 수로만 따진다면 중국어가 지구촌의 언어가 되어야겠지만 사용자 순위 3위인 영어가 세계 공용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자의 과학성을 논하자면 한글은 독보적 지위이지만 ‘발명자도 없이 오랜 세월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의 손을 탄’ 알파벳도 충분히 쓸 만하니 ‘한글의 세계화’는 꿈꿀 이유가 없다. 사용자 수 13위의 한국어, 이 언어를 적기 위한 과학적인 문자 한글, 딱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된다.
한글 혹은 한국어 네 컷
맨해튼의 코리아타운인 32번가, 그런데 대실망이다. 휘황찬란한 거리에 한글 간판이 넘쳐날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흔하디흔한 뉴욕 거리 중 하나에 간간이 한글이 보일 뿐이다. 애초에 기대가 잘못됐다. 남의 나라, 그것도 세계 최대 도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한국의 풍경을 기대한 것이 잘못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국에서 유행하는 즉석 사진관 간판이 눈길을 끈다. 정작 중심이 되어야 할 ‘인생네컷’은 세로글씨로 구석에 몰려 있는, 영어와 중국어 안내가 주인 행세를 하는 간판이다. 이 간판은 뉴욕, 아니 세계 속 한국어와 한글의 네 컷을 보여주기도 한다.
첫 번째 컷은 ‘더큰집 THE KUNJIP’이다. 한글과 알파벳 표기가 함께 있으니 한국인은 이 집의 정체를 안다. 비교의 대상은 없지만 아마도 이 거리의 제일 큰 식당을 지향하는 것일 듯하나 사실은 ‘THE KUNJIP’의 정관사 ‘the’를 한글로 적은 것일 뿐이다. 한글로 적었다고 해서 한국어인 것도 아니고 알파벳으로 적었다 해서 영어인 것도 아니다. 알파벳으로 적었다 하더라도 영어 사용자들은 그 뜻을 알 수 없으니 그저 기호일 뿐이다. 함께 적힌 한글 역시 한국식당임을 알리는 기호일 뿐이다.
두 번째 컷은 ‘CHIMAEK’이다. 한글로 적으면 ‘치맥’인데 이마저도 뜻을 알 수 없으니 ‘치킨에 맥주’의 첫 글자를 딴 신조어임을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치킨’은 서양의 음식이고 서양의 ‘비어(Beer)’가 들어와 ‘맥주’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니 이 또한 서양의 술이다. 물 건너온 음식이 한국 땅에서 새롭게 조화를 이룬 후 한국어식 신조어와 함께 역수출되었다. 한국 땅에서 조합된 한국 음식이자 그 이름은 한국어이니 알파벳으로 적더라도 외국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괜찮다. 그 이름이 궁금하면 먹어보면 되고 그 조화가 훌륭하면 이름의 유래까지 스스로 알게 하면 그만이다.
세 번째 컷은 ‘그리운 miss KOREA’이다. 한국식으로는 ‘고깃집’이라고 해야겠지만 ‘Barbecue Restaurant’이라고 정체를 밝히고 있다. 한글로 쓰인 ‘그리운’과 알파벳으로 적힌 ‘miss KOREA’가 말장난이지만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어 단어 ‘miss’는 ‘그리워하다’는 뜻도 있으니 ‘그리운’과 뜻이 통한다. 혹은 아름다운 한국 여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일 수도 있다. 외국인과 함께 이 식당을 방문한 한국인은 한국어와 영어가 뒤죽박죽인 이 집 상호를 재미있게 설명하며 고기구이의 맛을 즐기면 된다.
네 번째 컷은 손글씨로 거칠게 쓴 ‘짬뽕’이다. 이 글씨를 읽을 줄 알고, 이 글씨에 이끌려 식당의 문을 연 이는 틀림없이 한국에서 짬뽕을 먹던 교포이거나, 기름진 음식에 물린 한국인 관광객일 것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 개발한 음식인 ‘ちゃんぽん’,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붉은 국물로 바뀐 ‘짬뽕’, 이것이 다시 중국에 들어가 ‘한식초마면(韓式炒碼麵)’이 된 그것이다. 음식은 이렇게 짬뽕이 되고 말은 더 심한 짬뽕이 된다. 물 건너 멀리 뉴욕까지 온 한국어와 한글은 이렇게 네 컷의 짬뽕이 되어 살아 있다.
출구가 아니다
코리아타운의 실망을 짬뽕으로 달래고 뉴욕의 자랑인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향한다. 거대한 규모, 상상을 초월하는 소장품과 전시물에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역시 시선은 온통 한글과 한국어에 쏠린다. 그런데 ‘모마’에는 한국어가 없다. 젊은이들의 신조어처럼 들리지만 ‘Museum of Modern Art’의 머리글자를 딴 줄임말이니 한국이라면 ‘현대미술박물관’을 줄인 ‘현박’ 또는 ‘미박’이 될 이곳에는 한국어가 없다. 아니 QR코드를 스캔하면 볼 수 있는 주의사항에는 여러 언어가 있지만 이따금 보이는 외국어 작품 이름 외에는 ‘잉글리시 온리(English Only)’이다.
너무 불친절한 것 아닌가? 아니다. 국제도시 뉴욕에 왔으니 영어로 된 설명 정도는 읽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때를 놓친 이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의 뒤를 이을 세대는 이 정도쯤은 척척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키워야 한다. 전시된 작품이 궁금하고 애정이 있다면 따로 공부하고 와서 작품을 직접 보고 감동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과 애정 없이 한국어와 한글을 고집한다면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기를 꿈꾸지 말아야 한다.
자연사박물관의 입구에서부터 상한 마음은 아시아관에 이르러서 극한에 다다른다. 입구에 비치된 안내지도가 ‘Hello,你好, Hola’라고 인사하는데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안내지도가 안 보인다. 마음 상할 일이 아니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는 사용자 수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언어이니 딱 그만큼 준비된 것이다. 나머지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모국어에 외국어 하나를 더해 더 폭넓은 세계인으로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면 된다. 너무 작은 규모의 한국관에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옳지 않다. 땅덩어리, 인구, 경제력 등 여러 면에서 넘을 수 없는 혹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격차가 있으니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문화적 역량을 더 키워나가면 된다.
자연사박물관의 한 통로 앞에 세워진 안내판의 ‘출구가 아니다’란 문구가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문구는 사람이 아닌 번역기의 작품이다. ‘No Exit’란 영어 문구를 번역기에 넣어 언어별로 번역해 만든 것인데 번역기의 성능이 시원찮다. 그래도 이 안내문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보여준다. 영상 속의 언어를 바로 번역해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외국어를 바로 번역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모국어’에만 얽매이거나 ‘외국어’에 대한 혐오나 동경에 사로잡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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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가 아니다. 국제도시 뉴욕에 와서 한글과 한국어만 찾는 것은 출구가 아니다. 사람, 언어, 문화가 짬뽕이 되어 사는 시대에 한국어의 순수성만 고집하거나 한글의 우수성에 취해 있는 것은 출구가 아니다. 모두가 세계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대에 곧 물러갈 세대를 위한 번역을 요구하는 것은 출구가 아니다.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쇄된 책자나 전시된 공간의 크기에 연연하는 것도 출구가 아니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뉴욕에 사는 영국인 스팅은 남들이 뭐라 하든 당신답게 살라고 말한다. 누가 뭐라 해도 한국어는 사용자 수 13위의 세계적 언어이고 한글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학적인 문자이다. 그러나 한국어가 세계어가 되고, 한글이 세계화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자기비하에 빠질 이유도 없다. ‘케이 푸드, 케이 팝, 케이 드라마’ 등의 문화를 통해 우리의 말과 글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도우면 된다. 우리의 문화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번역기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듯 우리 또한 이를 통해 더 많은 세계와 접촉하며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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