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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문화와 삶]존재와 부재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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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17 16:12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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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이달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로기완>(2024)은 살기 위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탈북인 ‘기완’의 삶을 들여다보는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각색한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으로의 성급한 귀결은 배우들의 호연으로도 잘 봉합되지 않는 듯해 아쉬웠지만, 기완이 낯선 땅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진술한다. 이때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넘기고 돈을 마련했던 비극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하게 되는데, 해당 병원이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발뺌하자 기완은 궁지에 몰린다. 설상가상 증인으로 나서주겠다던 공장 동료 선주는 그를 배신하고 로기완이 정치적 망명이 인정되는 북한 사람 행세를 하여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조선족이라고 거짓 진술한다. 기완은 난민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해 고초를 겪는다.
이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다니엘’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서류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라는 관공서의 요구 앞에 무력해지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노인인 다니엘은 구직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저곳 전전하며 그 경험을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 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런 형식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차가운 답변뿐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심사 절차 앞에 번번이 좌절하는 인물들을 보며 비참함, 연민, 수치심과 같은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언어를 초과하는 감정을 느꼈다. 여전히 나는 이를 형언할 어떠한 단어도 찾지 못했다.
각자의 처지는 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와 같이 존엄성을 위협해 오는 황당하고도 잔인한 상황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을 쉽게도 모욕 주는 이 사회의 시스템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성실을, 당신의 가난을, 당신의 당신 됨을 입증하라고 다그치며 인간을 문밖에 세워두기만 하는 거대하고도 견고한 성 앞에서, 영영 문서화되지 않을 단서들만 잔뜩 안아 들게 되었을 때 느끼는 허탈감과 울분을 우리는 깊이 이해한다. ‘나’를 구성하는 생의 파편들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조각조각 무용해질 때의 막막함 역시 잘 알고 있다.
국민의 방송
후회 없이, 함께, 꿈을 꿀 수 있을까?
한 수 접는 마음
조해진 작가가 <로기완을 만났다>에 서술했듯, 우리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은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이나 살아온 삶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인격적 주체를 배제하며 생체정보만을 감시하는 현 사회의 모순적인 통치 방식을 지적한 바 있다. 범죄자들의 신원확인에 활용되었던 인체측정학 기술이 20세기 이후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확장됨에 따라 정체성은 개성과 인격과 무관해진 채, 생물학적 데이터로서의 기능만을 지니게 되었으며, 인간은 자기 정체성에 관여할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환원되고 말았다는 진단이다.(<벌거벗음>, 김영훈 옮김, 인간사랑, 2014) ‘나’의 정체성은 본질적인 ‘나’와 무관해졌으며, ‘나’를 입증하는 생체 정보들에 ‘나’는 개입할 수 없으므로 ‘나’로부터 ‘나’가 철저히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버린 것이다. 아감벤이 정체성의 변화와 그 기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체성을 규정 및 관리하는 작금의 제도가 결코 ‘자연 그대로’는 아니라는 사실을 내보이기 위해서일 테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을 증명하는,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부정하는 서류들과 씨름하며 당신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와 동떨어진 이력으로 우리를 입증하고 우리로부터 추방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내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서류에 나는 부재한다.
다양성(多樣性). ‘모양·빛깔·형태·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을 뜻한다. 존재하는 세상 자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묘사할 때 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생물다양성이나 문화다양성처럼 앞에 수식어를 붙여 어떠한 의지·지향을 담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의 놀라운 사용법을 최근 접했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5·18민주화운동 북한 개입설 등을 주장한 도태우 변호사 공천 결정을 유지하며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당이지 않으냐고 해명했다. 도 변호사의 5·18 폄훼 발언은 소수에 속한다. 그것이 소수인 이유는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허위에 기반한 의견으로 5·18 희생자와 유족에게 한번 더 상처를 주는 말도 다양성으로 감싸줘야 할 것인가.
일본 자민당에서도 다양성이 입방아에 올랐다. 당 소속 남성 정치인들이 연 친목회에 반라의 여성 댄서들을 불러 춤추게 하고, 입맞춤으로 팁을 전달하는 사진들이 공개됐다. 그러자 이 자리를 만든 의원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댄서들을 불렀다고 했다.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지 돌아보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궤변인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뭐가 문제냐’고 하는 이 사회 주류의 변함없는 인식 수준을 보여준 것인가.
다양성은 밀려날 위기에 처한 소수자·약자·타자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게 순전히 주류의 이타심 때문은 아니다. 우세 단일종이나 주류 문화만으론 변화와 도전을 뛰어넘어 생존하기 어렵다는 공리주의적 시각도 담겨 있다. 기실, 다양성은 진화론적으로도 어떤 생명체가 오랜 세월 생존해온 요인이다. 사회도 다양한 정체성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함께 살 수 있어야 좋은 사회이고 지속 가능하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고, 권력을 휘두르는 주류 정치권이 소수자를 혐오하고 낙인찍는 데 다양성을 가져다 쓴다면 그 말의 심각한 오용이다. 주류의 퇴행적 생각을 강요하는 폭력과 혐오 표현까지 다양성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나 생명과 직결돼 정말로 다양성을 희구하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2024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에 출전하는 LA 다저스 선수들이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2024.3.15.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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