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14) 우이동의 옛 그린파크호텔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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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17 18:55 조회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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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과 2023년 사진은 같은 장소를 찍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멀리 산이 보이고 길 양옆에 숲이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숲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뒤로 보이는 두 개의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만 두 사진이 동일한 곳에서 촬영된 사실을 입증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바위 봉우리가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와 인수봉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두 봉우리가 사진처럼 보이는 곳은 어디일까?
먼저 1971년 사진에는 정면에 ‘백운문(白雲門)’이라는 현판을 단 전통 양식의 웅장한 대문이 보이고, 문 뒤 오른편 숲속에 현대식 건물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을 향해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오르막길을 가고 있다. 2023년 사진에는 큰 대문이 사라지고, 대신 경비실로 추정되는 작은 구조물 좌우로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길 양편의 숲도 새로 조성되었으며, 오른쪽으로는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북한산의 모습을 거의 가리었다.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두 사람의 뒷모습도 보인다.
이곳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북한산 등산로 어귀이다. 1971년의 백운문은 사진 오른쪽에 위치한 그린파크호텔의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정문이었다. 1968년 문을 연 그린파크호텔은 호텔보다도 야외수영장으로 더 유명했다. 50m 길이의 정규 풀과 다이빙 풀, 어린이 풀은 물론이고 수중 미끄럼틀을 갖추고 있었고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여서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붐비는 명소였다. 특히 높은 곳에서 타고 내려오는 ‘하이슬라이더’라는 미끄럼틀은 따로 이용료를 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2023년 사진의 새 건물은 옛 그린파크호텔 자리에 지은 ‘파라스파라’라는 리조트다. 2009년부터 짓기 시작하였으나, 시공사 부도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21년에야 개장했다.
그럼 ‘백운문’은 어디로 갔을까? 이 문은 현재 서울광장 앞 환구단에 있다. 이 문은 본래 1897년 세워진 환구단의 정문이었고, 1914년 일제가 환구단 자리에 세운 조선호텔의 정문 역할을 했으나, 1967년 조선호텔을 재건축할 때 해체되어 전혀 연고도 없는 우이동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2007년에 이 문의 내력이 밝혀져 2009년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진 곳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백운대에서 딴 걸로 추정되는 ‘백운문’이란 현판도 물론 제거되었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113) 강화 초지진
(112) 진주성 3·1독립운동 기념비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111)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
먼저 1971년 사진에는 정면에 ‘백운문(白雲門)’이라는 현판을 단 전통 양식의 웅장한 대문이 보이고, 문 뒤 오른편 숲속에 현대식 건물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을 향해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들이 오르막길을 가고 있다. 2023년 사진에는 큰 대문이 사라지고, 대신 경비실로 추정되는 작은 구조물 좌우로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길 양편의 숲도 새로 조성되었으며, 오른쪽으로는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북한산의 모습을 거의 가리었다.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멘 두 사람의 뒷모습도 보인다.
이곳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북한산 등산로 어귀이다. 1971년의 백운문은 사진 오른쪽에 위치한 그린파크호텔의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정문이었다. 1968년 문을 연 그린파크호텔은 호텔보다도 야외수영장으로 더 유명했다. 50m 길이의 정규 풀과 다이빙 풀, 어린이 풀은 물론이고 수중 미끄럼틀을 갖추고 있었고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여서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붐비는 명소였다. 특히 높은 곳에서 타고 내려오는 ‘하이슬라이더’라는 미끄럼틀은 따로 이용료를 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2023년 사진의 새 건물은 옛 그린파크호텔 자리에 지은 ‘파라스파라’라는 리조트다. 2009년부터 짓기 시작하였으나, 시공사 부도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21년에야 개장했다.
그럼 ‘백운문’은 어디로 갔을까? 이 문은 현재 서울광장 앞 환구단에 있다. 이 문은 본래 1897년 세워진 환구단의 정문이었고, 1914년 일제가 환구단 자리에 세운 조선호텔의 정문 역할을 했으나, 1967년 조선호텔을 재건축할 때 해체되어 전혀 연고도 없는 우이동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2007년에 이 문의 내력이 밝혀져 2009년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진 곳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백운대에서 딴 걸로 추정되는 ‘백운문’이란 현판도 물론 제거되었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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