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일상과 호사]누가 가난을 말하는가…BMW 5시리즈와 카푸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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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13 06:19 조회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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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 유튜브 구독자가 159만명인 미국 작가가 올린 영상의 제목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신경끄기의 기술>을 쓴 작가 마크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맨슨이 서울을 두루 경험하고, 서울 사람을 인터뷰하고,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고, 나름의 리서치를 통해 뽑아낸 제목이었다. 그 영상을 바탕으로 무수한 기사가 출고되었다. 24분 길이의 짧은 다큐멘터리였다. 몇가지 주제가 있었지만,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자본주의의 단점인 물질주의와 돈에 대한 집착을 강조하는 바람에 자본주의의 장점인 자기표현과 개인주의가 무시됐다. 슬프게도 한국은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극대화했다.
비슷한 시기, 직접 운영 중인 채널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정우성의 더파크’ 댓글창도 폭발 중이었다. 자동차, 가전제품, 옷, 책 등의 리뷰 영상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칼럼처럼 업로드하는 채널인데, BMW 5시리즈를 리뷰하는 영상의 댓글창에서 좀 미묘한 주제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마치 각자의 이념을 대변하는 것같이 강경한 어투였다.
돈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상위 트림 혹은 풀옵션을 산다?하위 트림 사면 돈 없는 사람 혹은, 차 살 능력은 없는데 무리해서 산 사람이다?도대체, 얼마짜리 차를 사야 카푸어 소리 안 들을 수 있나요
BMW 5시리즈는 해당 세그먼트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세단이다. 약간 전문적인 용어로는 E 세그먼트, 친숙한 단어로는 중형 세단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이기도 하고, 일단 출시하기만 하면 시장이 들썩이는 인기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는 오래된 라이벌 사이다. 5시리즈와 E-클래스가 대표하는 6000만원 이상 프리미엄 중형 세단 시장의 규모를 대략 15만대 정도로 보는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잘 팔린다는 얘기다.
BMW가 뉴 5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던 지난해 10월의 행사도 BMW가 생각하는 한국 시장의 위상을 잘 보여줬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 출시한 날이었고, BMW 디자인 수장 반 호이동크가 직접 찾아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BMW 홍보대사 빈지노의 공연도 있었다. 빈지노는 BMW의 전기차 i4 m50을 탄다. 기세가 제대로 올랐던 걸까. BMW는 2023년 한 해 동안 총 7만7395대를 팔아 메르세데스-벤츠를 누르고 수입차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판매량과 관계없이 5시리즈는 썩 비싼 차다. 세그먼트의 ‘엔트리’로 분류할 수 있는 520i를 6880만원부터 살 수 있다. 같은 가솔린 엔진을 쓰지만 출력과 토크 수치가 더 높은 또 다른 모델 530i xDrive는 8420만원부터 시작이다. 자산 규모가 넉넉한 소비자라도 어떤 결심이 필요한 브랜드와 모델이다. 명백하게도, 통장 잔액이 풍성하다고 다 비싼 차를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장에선 취향도 첨예하게 작용한다. 독일 브랜드 3대장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에 아우디까지 더해 각각의 중형 세단 5시리즈와 E-클래스, A6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토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출시한 제네시스 G80의 상위 모델까지 고려하면 어떨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대화가 될 것이다. 다 같은 독일 세단이지만 디자인도 운전 감각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그런 소비재다. 취향과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풍성하다.
하지만 댓글창의 폭발에는 관용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의 요지는 분명했다. 상위 모델 530i가 여러모로 풍족한 옵션과 주행성능을 갖고 있지만 주행 성향과 취향에 따라 520i를 선택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취지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둘 다 차고 넘치는 성능을 가졌고, 운전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도 매력덩어리라는 평이었다. 그러니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취향껏 선택하라는 조언이었다. 영상을 업로드하기 전까지, 이게 그렇게 어려운 얘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좀 실감 나게) 몇개의 댓글을 소개할까 한다.
아니, 돈 있으면 530이 좋다고요. 더 있으면 740이 좋고 더 있으면 페라리가 람보르기니가 좋다고요. 더 있으면 전용기가 더 좋고요.
말은 바로 합시다. 돈 있으면 530 가는 게 맞지. 왜 돈 있는데 520을 사요? 돈 있으면 5시리즈가 아니라 7시리즈 사는 게 무조건 맞잖아요? 왜 굳이 살 능력이 있는데 아랫급을 사요?
한국에선 520d, 520i는 카푸어들의 대표적인 차가 돼서 돈 없어서 산다는 게 각인됨.
비교적 문장의 꼴을 하고 있는 댓글 중 가장 대표적인 취지가 살아 있는 몇개를 소개한 것이다. 대부분은 지면에 싣기 어려운 단어와 에너지가 섞여 있었다. 단어는 비속어였고 에너지는 분노에 가까웠다. 19분 정도 되는 원본 영상에는 152개, 짧게 잘라 쇼트폼으로 올린 영상에는 92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궁금했다. 프리미엄 세단에서 시작한 논의가 전용기까지 가는 비약은 어디서 온 걸까? 돈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상위 트림 혹은 풀옵션을 사나? 그래서 하위 트림을 사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거나, 차를 살 능력이 없는데 굳이 소유하면서 일상생활에도 무리가 온 케이스일까?
카푸어는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차를 사는 바람에 일상이 가난해진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다.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1980~199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등장했던 ‘페라리 거지’와 비슷한 의미다. 일본에도 그런 흐름이 있었다. 고소득층의 슈퍼카 소비가 늘자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소비만 흉내 내는 것이었다. 보증금을 빼거나 심지어 굶어가며 슈퍼카를 사서 할부금을 갚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댓글에서 반복된 단어 혹은 가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돈 있으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돈이 있으면 무조건 비싼 트림을 산다는 주장이었다. 시트도 더 고급스럽고 실내조명도 화려한데 왜 아랫급을 사냐는 반문이었다. 그게 ‘급’을 나눈다고도 했다. 그러니 그 좋은 상위 모델을 두고 하위 트림을 사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마크 맨슨은 한국을 며칠이나 여행했던 걸까? 그가 한국의 이상한 자본주의와 희박한 개인주의에 대해 내렸던 진단을 마침 댓글들이 증명하는 중이었다. 조선의 사농공상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돈이 많으면 양반인 시대의 개막. 1980년대 ‘마이카 시대’부터 자동차의 크기와 브랜드를 신분의 증명처럼 여기는 시선이 있었다. 수십년이 지났고, 자동차를 소비하는 세대도 바뀌었지만 경향은 더 심해졌다. 요즘은 어차피 집은 못 살 테니 젊을 때 무리해서 비싼 차를 경험해보자 결심하기도 한다. 이른바 ‘하차감’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차에서 내릴 때 느껴지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이다. 비싼 차에서 내리면 존중받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는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댓글의 축복이자 저주일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개인이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쓰고 있는데, 그 안에 정작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를 고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타인의 시선이고, 심지어 6000만원이 넘는 차를 사면서도 가난해 보일지 모른다 걱정하는 (이상한) 자본주의적 치열함. 무조건 비싼 트림을 선택해야 있어 보이고, 회사나 친구들에게 설명하기도 좋다는 의견은 댓글창에서 붙은 싸움의 부록 같았다.
댓글창을 벗어나면 취향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나온 5시리즈는 두루 훌륭한 성능과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프리미엄 세단이다. 520i와 530i는 물론 다르다. 출력과 토크, 가죽 종류, 인테리어 옵션도 다르다. 하지만 520i를 시승해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530i를 타봤는데 약 1500만원의 가치를 느꼈다면 또 그걸로 좋은 것이다. 각자의 형편에서 취향에 맞게 선택 하면 그것으로 떳떳한 것이다. 이미 너무 비싼 세계의 이야기. 어느 쪽도 틀리거나 가난하지 않다. 어디서 (감히) 가난을 언급하는 걸까. 정말 가난한 건 댓글창에서 분노하던 언어의 빈약함이었다.
자본주의의 단점인 물질주의와 돈에 대한 집착을 강조하는 바람에 자본주의의 장점인 자기표현과 개인주의가 무시됐다. 슬프게도 한국은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극대화했다.
비슷한 시기, 직접 운영 중인 채널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정우성의 더파크’ 댓글창도 폭발 중이었다. 자동차, 가전제품, 옷, 책 등의 리뷰 영상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칼럼처럼 업로드하는 채널인데, BMW 5시리즈를 리뷰하는 영상의 댓글창에서 좀 미묘한 주제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마치 각자의 이념을 대변하는 것같이 강경한 어투였다.
돈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상위 트림 혹은 풀옵션을 산다?하위 트림 사면 돈 없는 사람 혹은, 차 살 능력은 없는데 무리해서 산 사람이다?도대체, 얼마짜리 차를 사야 카푸어 소리 안 들을 수 있나요
BMW 5시리즈는 해당 세그먼트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세단이다. 약간 전문적인 용어로는 E 세그먼트, 친숙한 단어로는 중형 세단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이기도 하고, 일단 출시하기만 하면 시장이 들썩이는 인기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는 오래된 라이벌 사이다. 5시리즈와 E-클래스가 대표하는 6000만원 이상 프리미엄 중형 세단 시장의 규모를 대략 15만대 정도로 보는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잘 팔린다는 얘기다.
BMW가 뉴 5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던 지난해 10월의 행사도 BMW가 생각하는 한국 시장의 위상을 잘 보여줬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 출시한 날이었고, BMW 디자인 수장 반 호이동크가 직접 찾아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다. BMW 홍보대사 빈지노의 공연도 있었다. 빈지노는 BMW의 전기차 i4 m50을 탄다. 기세가 제대로 올랐던 걸까. BMW는 2023년 한 해 동안 총 7만7395대를 팔아 메르세데스-벤츠를 누르고 수입차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판매량과 관계없이 5시리즈는 썩 비싼 차다. 세그먼트의 ‘엔트리’로 분류할 수 있는 520i를 6880만원부터 살 수 있다. 같은 가솔린 엔진을 쓰지만 출력과 토크 수치가 더 높은 또 다른 모델 530i xDrive는 8420만원부터 시작이다. 자산 규모가 넉넉한 소비자라도 어떤 결심이 필요한 브랜드와 모델이다. 명백하게도, 통장 잔액이 풍성하다고 다 비싼 차를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장에선 취향도 첨예하게 작용한다. 독일 브랜드 3대장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에 아우디까지 더해 각각의 중형 세단 5시리즈와 E-클래스, A6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토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출시한 제네시스 G80의 상위 모델까지 고려하면 어떨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대화가 될 것이다. 다 같은 독일 세단이지만 디자인도 운전 감각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그런 소비재다. 취향과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풍성하다.
하지만 댓글창의 폭발에는 관용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의 요지는 분명했다. 상위 모델 530i가 여러모로 풍족한 옵션과 주행성능을 갖고 있지만 주행 성향과 취향에 따라 520i를 선택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거라는 취지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둘 다 차고 넘치는 성능을 가졌고, 운전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도 매력덩어리라는 평이었다. 그러니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취향껏 선택하라는 조언이었다. 영상을 업로드하기 전까지, 이게 그렇게 어려운 얘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기서부터는 (좀 실감 나게) 몇개의 댓글을 소개할까 한다.
아니, 돈 있으면 530이 좋다고요. 더 있으면 740이 좋고 더 있으면 페라리가 람보르기니가 좋다고요. 더 있으면 전용기가 더 좋고요.
말은 바로 합시다. 돈 있으면 530 가는 게 맞지. 왜 돈 있는데 520을 사요? 돈 있으면 5시리즈가 아니라 7시리즈 사는 게 무조건 맞잖아요? 왜 굳이 살 능력이 있는데 아랫급을 사요?
한국에선 520d, 520i는 카푸어들의 대표적인 차가 돼서 돈 없어서 산다는 게 각인됨.
비교적 문장의 꼴을 하고 있는 댓글 중 가장 대표적인 취지가 살아 있는 몇개를 소개한 것이다. 대부분은 지면에 싣기 어려운 단어와 에너지가 섞여 있었다. 단어는 비속어였고 에너지는 분노에 가까웠다. 19분 정도 되는 원본 영상에는 152개, 짧게 잘라 쇼트폼으로 올린 영상에는 92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궁금했다. 프리미엄 세단에서 시작한 논의가 전용기까지 가는 비약은 어디서 온 걸까? 돈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상위 트림 혹은 풀옵션을 사나? 그래서 하위 트림을 사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거나, 차를 살 능력이 없는데 굳이 소유하면서 일상생활에도 무리가 온 케이스일까?
카푸어는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차를 사는 바람에 일상이 가난해진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다.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1980~199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등장했던 ‘페라리 거지’와 비슷한 의미다. 일본에도 그런 흐름이 있었다. 고소득층의 슈퍼카 소비가 늘자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소비만 흉내 내는 것이었다. 보증금을 빼거나 심지어 굶어가며 슈퍼카를 사서 할부금을 갚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댓글에서 반복된 단어 혹은 가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많은 사람이 ‘돈 있으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다. 돈이 있으면 무조건 비싼 트림을 산다는 주장이었다. 시트도 더 고급스럽고 실내조명도 화려한데 왜 아랫급을 사냐는 반문이었다. 그게 ‘급’을 나눈다고도 했다. 그러니 그 좋은 상위 모델을 두고 하위 트림을 사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마크 맨슨은 한국을 며칠이나 여행했던 걸까? 그가 한국의 이상한 자본주의와 희박한 개인주의에 대해 내렸던 진단을 마침 댓글들이 증명하는 중이었다. 조선의 사농공상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돈이었다. 돈이 많으면 양반인 시대의 개막. 1980년대 ‘마이카 시대’부터 자동차의 크기와 브랜드를 신분의 증명처럼 여기는 시선이 있었다. 수십년이 지났고, 자동차를 소비하는 세대도 바뀌었지만 경향은 더 심해졌다. 요즘은 어차피 집은 못 살 테니 젊을 때 무리해서 비싼 차를 경험해보자 결심하기도 한다. 이른바 ‘하차감’을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차에서 내릴 때 느껴지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이다. 비싼 차에서 내리면 존중받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는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댓글의 축복이자 저주일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개인이 각자의 모니터 앞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쓰고 있는데, 그 안에 정작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차를 고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타인의 시선이고, 심지어 6000만원이 넘는 차를 사면서도 가난해 보일지 모른다 걱정하는 (이상한) 자본주의적 치열함. 무조건 비싼 트림을 선택해야 있어 보이고, 회사나 친구들에게 설명하기도 좋다는 의견은 댓글창에서 붙은 싸움의 부록 같았다.
댓글창을 벗어나면 취향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나온 5시리즈는 두루 훌륭한 성능과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프리미엄 세단이다. 520i와 530i는 물론 다르다. 출력과 토크, 가죽 종류, 인테리어 옵션도 다르다. 하지만 520i를 시승해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530i를 타봤는데 약 1500만원의 가치를 느꼈다면 또 그걸로 좋은 것이다. 각자의 형편에서 취향에 맞게 선택 하면 그것으로 떳떳한 것이다. 이미 너무 비싼 세계의 이야기. 어느 쪽도 틀리거나 가난하지 않다. 어디서 (감히) 가난을 언급하는 걸까. 정말 가난한 건 댓글창에서 분노하던 언어의 빈약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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