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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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10 22:21 조회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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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가 별세했다. 향년 95세.
서울대병원은 7일 오후 5시39분쯤 손 여사가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알렸다. 병원은 손 여사는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손 여사는 1929년 1월1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서 아버지 손상호씨와 어머니 감덕순씨의 2남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종업원 800여명을 둔 경향고무 사장이었다. 손 여사는 진영공립보통학교(1996년 진영대창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마산여중과 마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약대를 수석 입학했다.
3학년이던 1951년 동갑내기인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은 장택상 국회의원 비서관이었다. 이화여대는 재학생 금혼 규정을 뒀다. 주변 도움으로 졸업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학업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15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65년 동안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 오래 산 손 여사는 남편을 위해 헌신한 ‘그림자 내조’의 달인 으로 불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1987년 대선 때 남편의 일요일 유세를 포기시킨 적도 있다.
고인이 아니었으면 ‘정치인 김영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대권가도의 일등 공신으로도 평가받았다. 1992년 대선 때 전국 유명 사찰과 유력 종단을 빠짐없이 방문하며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90도 인사법’도 트레이드마크였다.
조은희 전 대통령 배우자 연구소 소장이 <김영삼 회고록> 등 여러 책을 참조해 2007년 인스타 팔로워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손 여사는 1993년 청와대에 들어간 뒤 10여 종의 신문을 정독하며 언론에 비친 남편의 모습을 모니터하고, 독자투고란까지 꼼꼼히 읽었다.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를 위한 구내식당과 여직원을 위한 휴게실을 새로 만들었다. 커튼과 식기 등 전임 대통령 부부들의 집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딸 혜영·혜정·혜숙씨, 아들 은철·현철씨 등 2남 3녀를 뒀다. 현철씨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다. 손자 인규씨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하려 자리에서 물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애도의 말을 전했다. 보내드리는 마음은 안타깝지만, 하늘에서 김영삼 대통령님을 만나 행복하게 계시리라 믿는다면서 유가족 여러분께 마음을 담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또 여사님께서는 평생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사셨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 여사님의 삶을 고맙고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지원단을 편성하여 장례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박정하 수석대변인 이름으로 낸 애도문에서 오랜 세월 민주주의 투사로, 야당 정치인으로, 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장 큰 버팀목은 65년의 반려자 손명순 여사라며 손명순 여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낸 후, 후대에 물려주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발인은 11일이다.
서울대병원은 7일 오후 5시39분쯤 손 여사가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알렸다. 병원은 손 여사는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유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손 여사는 1929년 1월1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서 아버지 손상호씨와 어머니 감덕순씨의 2남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종업원 800여명을 둔 경향고무 사장이었다. 손 여사는 진영공립보통학교(1996년 진영대창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마산여중과 마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약대를 수석 입학했다.
3학년이던 1951년 동갑내기인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은 장택상 국회의원 비서관이었다. 이화여대는 재학생 금혼 규정을 뒀다. 주변 도움으로 졸업 때까지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학업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15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65년 동안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 오래 산 손 여사는 남편을 위해 헌신한 ‘그림자 내조’의 달인 으로 불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1987년 대선 때 남편의 일요일 유세를 포기시킨 적도 있다.
고인이 아니었으면 ‘정치인 김영삼’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대권가도의 일등 공신으로도 평가받았다. 1992년 대선 때 전국 유명 사찰과 유력 종단을 빠짐없이 방문하며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고개를 90도로 숙이는 ‘90도 인사법’도 트레이드마크였다.
조은희 전 대통령 배우자 연구소 소장이 <김영삼 회고록> 등 여러 책을 참조해 2007년 인스타 팔로워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손 여사는 1993년 청와대에 들어간 뒤 10여 종의 신문을 정독하며 언론에 비친 남편의 모습을 모니터하고, 독자투고란까지 꼼꼼히 읽었다.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를 위한 구내식당과 여직원을 위한 휴게실을 새로 만들었다. 커튼과 식기 등 전임 대통령 부부들의 집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딸 혜영·혜정·혜숙씨, 아들 은철·현철씨 등 2남 3녀를 뒀다. 현철씨는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다. 손자 인규씨는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하려 자리에서 물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애도의 말을 전했다. 보내드리는 마음은 안타깝지만, 하늘에서 김영삼 대통령님을 만나 행복하게 계시리라 믿는다면서 유가족 여러분께 마음을 담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또 여사님께서는 평생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사셨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 여사님의 삶을 고맙고 아름답게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지원단을 편성하여 장례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박정하 수석대변인 이름으로 낸 애도문에서 오랜 세월 민주주의 투사로, 야당 정치인으로, 또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장 큰 버팀목은 65년의 반려자 손명순 여사라며 손명순 여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함께 맨땅에서 일궈낸 후, 후대에 물려주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발인은 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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