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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MC’와 ‘일요일의 막내딸’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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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08 16:28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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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을 하면 오리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는 벌을 받았다. 언덕 밑에서부터 학교 본관 건물이 있는 곳까지 쪼그려 앉아 귀를 잡고 걸으면 30분이 걸렸는데, 가장 큰 고비는 언제나 마지막 10분 코스였다. 마지막 고지를 오를 땐 교문 너머 건물이 보였다 말았다 했다. 눈앞에 끝이 보이면 초인적인 의욕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늘 그 지점에서 맥이 풀리곤 했다. 엉덩이를 옮기려 몸을 일으킬 때마다 건물 정면에 붙은 문장이 보이던 탓이었다.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되자.’ 여기서부터 스무 걸음. 눈 딱 감고 조금 더 기어가면 되는데 나는 번번이 교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선생님 못하겠어요. 이게 제 한계예요.
시간 안에 결승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령대에 일렬로 서서 다시 손바닥을 맞았고 선도부가 벌점도 매겼다. 이미 온몸이 후들거려 걸을 수도 없는데 폭행도 당하고 전과까지 생기다니 지나치게 가학적인 것 아닌가? 온갖 불만을 터뜨리며 교실로 이동할 땐 늘 창밖엔 같은 재단의 남학교가 보였다. 열을 맞춰 운동장을 뛰고 있는 무리가 저 학교의 지각생들이겠구나.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 풍경을 응시하면 이내 건물에 붙은 표어가 시야에 들어왔다. ‘질서 있고 창의적인 국민이 되자.’ 우리는 어머니고 너희는 국민. 동질감이란 뒤를 돌아서면 꺼지는 거품 같은 것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아흔이 넘어 손자 손녀 이름을 헷갈릴 때에도 송해와 강호동은 알아봤다. ‘송해 그 양반이 아직 사회를 보나.’ ‘자는 안다. 호동이 아이가.’ 나는 힘없이 웅크린 채 여생을 보내는 할머니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왠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말 뒤에는 응당 전국노래자랑!과 일박~ 이일!이란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외침이 이어져야 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국을 떠돌며 ‘국민 여러분’을 외치던 두 남자에게 ‘국민MC’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 나라의 ‘국민’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건데, 언덕을 오르며 고뇌를 강제하던 체벌은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인지를 끝없이 생각하게 했다. 나는 국민. 무대에 게스트로만 초대될 수 있는 국민. 아가씨, 아줌마, 손녀가 되어 그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내면 되는 국민. 전국 팔도에서 웃고 우는 남자들을 구경하는 국민. ‘요정’이나 ‘여신’이 아니라면 감히 그 세상을 넘볼 수 없는 국민.
2023년 KBS는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특집방송을 기획했다. 프리젠터로 나선 강호동은 ‘국민의 방송’으로 KBS를 호명하며 ‘국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영광을 자신의 지난 출연 작품들과 나란히 두고 다시 국민 여러분들께 더 큰 즐거움으로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KBS를 빛낸 50인’을 기리는 그 기념식에는 <전국노래자랑>의 새 진행자 김신영도 포함되었다. 김동건, 최불암, 유동근, 윤석호 등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 그는 KBS가 100주년을 맞으면 <전국노래자랑>의 왕할머니가 되어 이 자리에 함께하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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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이 ‘일요일의 막내딸’이 되었던 1년6개월 전, 나는 내가 사랑하는 텔레비전 속에서 비로소 내가 ‘참되고 어진 어머니’가 아닌 ‘국민’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나는 그 기쁨에 꽤나 고무되어 많은 것을 갈망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순수하게 절망한다.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가 갑자기 교체된 정치적 사유를 추측하는 일도, 절차를 무시한 석연치 않은 과정을 부당하게 여기는 것도, ‘여자라서가 아니라, 진행 자질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겨운 가혹함도, ‘자질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적은 기회였다’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울화도. 모두 참되지 못하고, 어질지 못한 가슴에 묻으면서.
▼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조작 사태에 가담한 변호사·회계사 등 41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하동우)는 지난해 4월 발생한 SG증권발 주가폭락사태 당시 주식 시세조종에 관여한 자문변호사·회계사 등 41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구속기소된 핵심 인물 라덕연씨 등 15명을 포함하면 이번 주가조작 사태로 총 56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피의자들은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상장된 8개 종목을 대상으로 주가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취한 부당이득 합계는 7305억원에 달했다.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다.
검찰에 따르면 총책 라씨는 50여명의 조직원을 영업관리팀·매매팀·정산팀·법인관리팀 등으로 나눠 운영했다. 매매팀은 3년여간 전국 각지에서 900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았다. 이들은 자산가치가 높고 경영이 안정적이면서, 유통주식 수가 적고 거래량이 많지 않은 종목을 주가조작 대상으로 삼았다. 시가총액이 작은 영세업체를 주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 주가조작 범행과는 다른 수법이다.
피의자들은 금융당국의 적발을 피하고자 투자자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를 가지고 투자자의 주소지로 이동해 주식을 매매하는 ‘이동매매’ 방식을 썼다. 또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주가를 올렸다.
검찰은 지난해 5월1일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와 합동수사팀을 구성하고 10일 만에 라씨 등을 구속했다. 이사급 임원과 매매팀장 등은 불구속기소 했다. 은행 고객을 투자자로 끌어들여 대가를 받은 시중은행 기업금융팀장과 증권사 고객의 계좌 대여를 알선해 대가를 받은 현직 증권사 부장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수재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피의자들 재산 가운데 220억원 상당을 추징보전 조치했다. 주가조작과 자금세탁 등에 이용된 10개 법인에 대해서는 법원에 법인해산명령을 청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회계사와 시중은행 임직원 등 외부 전문가들의 구조적 비리가 확인된 사건이라며 부당이득에 대해 끝까지 추적해 범죄수익은 한 푼도 챙길 수 없다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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