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민주당”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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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03 20:28 조회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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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 박용진 같은 ‘우수의원’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최하위 점수를 주는 등 ‘비명 제거’에 나섬으로써 대선 논쟁이 애당초 쇄신이 아니라 이재명의 향후 도전자 제거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경향신문 손호철 칼럼)
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 이재명 대표는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 생각해달라’고 했다.(…) ‘박용진’을 ‘정봉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민주당의 지향인가.(한겨레 권태호 칼럼)
지난 22일 아침 신문을 받아들고 이 두 칼럼을 읽으면서 픽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는 이 두 칼럼의 내용에 100% 동의한다. 그렇다면 분노해야 마땅할 일에 왜 웃음이 나오는가? 지금 인스타 팔로워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은 사실상 ‘공천 코미디’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코미디의 묘미는 추악한 각자도생이 전혀 불필요한 상황에서 등장인물, 즉 전체 민주당 의원들이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렇게 되게끔 조종하거나 유도하는 사람의 능력이 천재적이라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게다. 하지만 선진국이거나 선진국 근처에 도달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경악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바로 이날 코미디에 주요 장면으로 들어갈 일들이 벌어졌고, 이후 마치 흥행을 돕겠다는 듯 재미있는 일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도 이재명이 22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당내 공천 논란에 대해 해명한 게 영 이상했다. 해명인지 조롱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그는 주관적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에 이런 게 있다며 심사위원의 심사 의견도 있지만 동료 의원의 평가, 그걸 거의 0점 맞은 분도 있다고 하더라. 여러분도 아마 짐작할 수 있는 분인 것 같다. 0점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또 하위 평가를 받거나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의 반발도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 상황서 친명계 웃음은 ‘우스꽝’
환골탈태를 말하면서 웃는 건 난센스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대를 바꿔 끼우고 태(胎)를 빼앗는다는 뜻의 끔찍한 말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말을 너무 쉽게,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오동환의 명저 <개나라 말 닭나라 국어>엔 이런 말이 나온다. 깎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놈의 뼈는 도대체 얼마나 굵길래 깎아내고 또 깎아내도 부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 육중한 몸뚱이를 감당해내는지 알 듯하면서도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은, 혁신은 원래 ‘가죽을 벗기는 것’이라는 말도 했는데, 환골탈태건 혁신이건 문제는 그 주체가 고통은 한사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떠넘긴다는 데에 있다. 오죽하면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은 현재 진행되는 이재명 대표의 혁신은 ‘비명의 가죽’을 벗겨서, 찐명의 가죽잠바를 만드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을까.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통을 떠넘기더라도 침울까지는 아닐망정 심각한 표정이나 자세라도 유지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22일 대정부 질문이 시작되기 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과 친명계 의원들이 화기애애한 웃음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총선용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공천 문제로 민주당이 벌집 쑤신 듯이 시끄럽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거나 분노하는 동료 의원들이 많은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19개월 전인 2022년 8월6일 강원 원주시 한라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지역순회 경선 합동연설회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이재명은 핏대를 세워가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이재명이 당권을 잡으면 공천 학살이 우려된다는 민주당 내 우려에 대해 ‘다름’은 ‘배제’나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을 통한 시너지의 자산이다. 통합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장면과 ‘0점, 환골탈태’ 발언을 하면서 웃는 장면의 대비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더욱 비현실적인 건 그런 비현실성을 큰 일 아니라는 듯,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 또는 자세다. 국회의원이 공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곤 하지만, 지금이 독재정권 시대는 아니잖은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38년째 경험하는 우리가 지난 세월 축적한 민주주의의 경험이라는 자산이 겨우 이 정도라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의 근원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이해득실만 영악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생각엔 두 종류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생각 시스템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누었다. ‘시스템 1’은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시스템인 반면,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 1’은 ‘빠르게 생각하기’, ‘시스템 2’는 ‘느리게 생각하기’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건 ‘시스템 1’이 맡는다. 이건 거의 본능이나 습관처럼 작동을 한다. 살벌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시스템 1’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상에 적응해가면서 살망정 그런 세상이 바뀌기를 바란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공존공영과 상호협력이 가능한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런 염원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많은 생각이 요구된다. ‘시스템 2’가 필요한 것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들은 그저 편견을 곱씹으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했고, 철학자 윌 듀런트도 사람들의 문제는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의 희망과 공포, 바람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들이 비판한 건 ‘시스템 1’에 속하는 생각인데, 사실 ‘시스템 2’의 생각은 힘들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생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므로 고통을 통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고 했고,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도 어떤 사람들에겐 생각을 해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인스타 팔로워 없다고 했다.
이재명 ‘만독불침 투쟁’의 극한
왜 정치는 증오·혐오에 미쳐 돌아가나
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한강의 기적’ 축복과 저주
어느 순간 생각은 당위일 뿐 현실에선 점점 멀어지는 신기루가 되고 만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시스템 2’의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어려워 옳건 그르건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실세계가 강요하는 삶의 문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면 그 문법을 정당화하는 방향과 내용의 생각만 하게 되는데,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이 생각 체계엔 성찰이 없다. 부끄러움도 없고 인스타 팔로워 역지사지도 없다. 적극적인 아첨까지 한다. 대선 수개월 전부터 민주당에 ‘재명학’ 열풍이 불었을 때 예고된 ‘지도자 맹종’이나 ‘지도자 숭배’ 체제의 치명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재명은 경기도지사로 일하던 2018년 11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각종 의혹에 대해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라며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공천 파동은 지난 세월 이재명을 지켜온 ‘만독불침 투쟁’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이번에도 그는 만독불침의 경지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서도 그게 과연 가능할까?
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 이재명 대표는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 생각해달라’고 했다.(…) ‘박용진’을 ‘정봉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민주당의 지향인가.(한겨레 권태호 칼럼)
지난 22일 아침 신문을 받아들고 이 두 칼럼을 읽으면서 픽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는 이 두 칼럼의 내용에 100% 동의한다. 그렇다면 분노해야 마땅할 일에 왜 웃음이 나오는가? 지금 인스타 팔로워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은 사실상 ‘공천 코미디’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코미디의 묘미는 추악한 각자도생이 전혀 불필요한 상황에서 등장인물, 즉 전체 민주당 의원들이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렇게 되게끔 조종하거나 유도하는 사람의 능력이 천재적이라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게다. 하지만 선진국이거나 선진국 근처에 도달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경악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바로 이날 코미디에 주요 장면으로 들어갈 일들이 벌어졌고, 이후 마치 흥행을 돕겠다는 듯 재미있는 일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도 이재명이 22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당내 공천 논란에 대해 해명한 게 영 이상했다. 해명인지 조롱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그는 주관적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에 이런 게 있다며 심사위원의 심사 의견도 있지만 동료 의원의 평가, 그걸 거의 0점 맞은 분도 있다고 하더라. 여러분도 아마 짐작할 수 있는 분인 것 같다. 0점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또 하위 평가를 받거나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의 반발도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 상황서 친명계 웃음은 ‘우스꽝’
환골탈태를 말하면서 웃는 건 난센스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뼈대를 바꿔 끼우고 태(胎)를 빼앗는다는 뜻의 끔찍한 말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 말을 너무 쉽게,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다. 오동환의 명저 <개나라 말 닭나라 국어>엔 이런 말이 나온다. 깎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 그놈의 뼈는 도대체 얼마나 굵길래 깎아내고 또 깎아내도 부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 육중한 몸뚱이를 감당해내는지 알 듯하면서도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은, 혁신은 원래 ‘가죽을 벗기는 것’이라는 말도 했는데, 환골탈태건 혁신이건 문제는 그 주체가 고통은 한사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떠넘긴다는 데에 있다. 오죽하면 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의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은 현재 진행되는 이재명 대표의 혁신은 ‘비명의 가죽’을 벗겨서, 찐명의 가죽잠바를 만드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을까.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통을 떠넘기더라도 침울까지는 아닐망정 심각한 표정이나 자세라도 유지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22일 대정부 질문이 시작되기 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과 친명계 의원들이 화기애애한 웃음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총선용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공천 문제로 민주당이 벌집 쑤신 듯이 시끄럽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거나 분노하는 동료 의원들이 많은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19개월 전인 2022년 8월6일 강원 원주시 한라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지역순회 경선 합동연설회로 잠시 돌아가보자. 당시 이재명은 핏대를 세워가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이재명이 당권을 잡으면 공천 학살이 우려된다는 민주당 내 우려에 대해 ‘다름’은 ‘배제’나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을 통한 시너지의 자산이다. 통합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장면과 ‘0점, 환골탈태’ 발언을 하면서 웃는 장면의 대비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더욱 비현실적인 건 그런 비현실성을 큰 일 아니라는 듯,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태도 또는 자세다. 국회의원이 공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곤 하지만, 지금이 독재정권 시대는 아니잖은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38년째 경험하는 우리가 지난 세월 축적한 민주주의의 경험이라는 자산이 겨우 이 정도라는 게 도무지 믿기질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의 근원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이해득실만 영악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생각도 생각 나름이다.
생각엔 두 종류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생각 시스템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누었다. ‘시스템 1’은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시스템인 반면,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 1’은 ‘빠르게 생각하기’, ‘시스템 2’는 ‘느리게 생각하기’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건 ‘시스템 1’이 맡는다. 이건 거의 본능이나 습관처럼 작동을 한다. 살벌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시스템 1’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세상에 적응해가면서 살망정 그런 세상이 바뀌기를 바란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공존공영과 상호협력이 가능한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런 염원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많은 생각이 요구된다. ‘시스템 2’가 필요한 것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들은 그저 편견을 곱씹으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했고, 철학자 윌 듀런트도 사람들의 문제는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의 희망과 공포, 바람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들이 비판한 건 ‘시스템 1’에 속하는 생각인데, 사실 ‘시스템 2’의 생각은 힘들 뿐만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생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므로 고통을 통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고 했고,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도 어떤 사람들에겐 생각을 해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인스타 팔로워 없다고 했다.
이재명 ‘만독불침 투쟁’의 극한
왜 정치는 증오·혐오에 미쳐 돌아가나
윤석열의 ‘순애보’를 어찌할 것인가
‘한강의 기적’ 축복과 저주
어느 순간 생각은 당위일 뿐 현실에선 점점 멀어지는 신기루가 되고 만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시스템 2’의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어려워 옳건 그르건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실세계가 강요하는 삶의 문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면 그 문법을 정당화하는 방향과 내용의 생각만 하게 되는데, 이미 습관으로 굳어진 이 생각 체계엔 성찰이 없다. 부끄러움도 없고 인스타 팔로워 역지사지도 없다. 적극적인 아첨까지 한다. 대선 수개월 전부터 민주당에 ‘재명학’ 열풍이 불었을 때 예고된 ‘지도자 맹종’이나 ‘지도자 숭배’ 체제의 치명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이재명은 경기도지사로 일하던 2018년 11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각종 의혹에 대해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라며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공천 파동은 지난 세월 이재명을 지켜온 ‘만독불침 투쟁’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이번에도 그는 만독불침의 경지를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서도 그게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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