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이진송의 아니 근데]요즘 한국사회를 휩쓰는 뜨거운 담론 - ‘도파민’과 ‘저속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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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3-03 21:12 조회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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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쾌락과 속도에 중독된 세상…더, 더, 더 갈증에 ‘해독제’는 없나
1월1일도 지났고, 설날도 지났으며, 이제는 3월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로도 벌써 3번째고, 봄의 문턱이며, 개강 및 개학의 철이기도 하니…이제 진짜 변화의 첫 삽을 뜨라는 압박이 공기 중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일찍 자기, 배달음식 줄이기, 스마트폰 사용시간 줄이기처럼 생활습관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핫’한 표현을 꼽자면 아무래도 ‘도파민’과 ‘저속 노화’(또는 가속 노화, 감속 노화)라는 단어이다. 도파민은 즐거움을 느낄 때 분비되어 소위 ‘쾌락 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도파미네이션>(애나 렘키 지음·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2022)이 출간된 이후 폭넓게 쓰이고 있다. 재미있는 장면이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두고 ‘도파민 터진다’ ‘도파민 구간’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한편 ‘저속 노화’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노년내과 의사이자 노화 연구자인 정희원 교수가 쏘아올린 공으로, 개인을 더 빠르게 나이 들고 병들게 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이 ‘가속 노화’를 늦출 수 있을지 논의하는 담론이다. 정희원 교수는 SNS에서 ‘저속 노화 선생님’ ‘가속 노화 선생님’ ‘감속 노화 선생님’ ‘렌틸콩 전도사’ 등으로 불리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런데 그가 저속 노화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사실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인다. 단순당 및 정제 탄수화물·초가공 식품·알코올·육류 섭취 제한, 자신의 몸을 이동수단 삼아서 많이 걷기, 충분한 수면…그런데 이 지극히 정석적이다 못해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방식이 새삼스럽게 인기를 끌며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파민이라는 단어의 유행과 저속 노화 열풍은 구체화되는 갈래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문제이다. 현대사회가 쾌락의 과잉을 권장 및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중독에 취약해진 개인은 착취당한다는 것. 고속 성장과 압축적 근대화라는 특수한 맥락이 있는 한국 사회는 근면 성실을 신성시하는 반면 쾌락과 즐거움은 죄악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거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광고 카피는 당시 신선함과 해방감을 내세우며 크게 히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다양하고 강도 높은 쾌락이 곳곳에 널려 있으며 즐기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온갖 재미있는 영상, 사진, 글, 타인과 즉각 연결되고 국적을 초월한 상품과 음식이 클릭 몇 번만 하면 문 앞에 도착한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우월한 삶인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요즘의 ‘핫플’은 어디이고 지금 OTT 1위 콘텐츠는 무엇인지 같은 정보가 끊임없이 갱신된다. 눈을 뗄 수도, 귀를 쉴 수도 없다. 뒤처지면 놀림받고 도태당한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잠깐만 쉬자 하고 누웠다가 스크롤 쳇바퀴에 빠지면 어느새 4~5시간이 훅 지나가 있었고, 그 뒤에 몰려오는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와 우울감이었다.
음식의 경우, 디저트와 액상과당에 푹 빠져 살았다. 매 시즌 새로운 디저트의 강자가 등장해서 짧게 천하를 쥐었다가 장렬하게 사라지길 반복했다. 대왕 카스텔라, 벌집 아이스크림, 버블티, 마카롱, 약과, 버터바, 탕후루 등의 계보는 내장을 착실하게 설탕에 절였고 시즈닝 치킨, 마라탕, 엽기 떡볶이 등의 맵고 달고 짠 배달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맵고 짠 것을 탐한 뒤 달달한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다시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시간과 돈을 탕진했으면 행복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딘가 공허한 즐거움의 유효 시간은 너무 짧았다. 더, 더, 더, 갈망하며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도파민에 대한 경계와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은개인을 중독에 빠뜨리는 구조를 직시하고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무한의 쾌락은 불가능하며오히려 적절한 제어와 고통이 살아가는 데필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이 새삼스럽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의지처럼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직시하고 발설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 기기나 쇼트폼 영상, 초가공 식품, 걷기 어려운 도시 환경 등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 쾌락의 이면에 자본주의의 규율을 신성시하는 기업의 이윤 추구가 도사리고 있으며, 전문가들이 치밀하게 ‘고객 유치’의 전술을 기획하고 업데이트한다. 넷플릭스 IT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는 SNS 뒤에서 고객의 정보와 관심사를 장악한 다국적기업의 전략을 파헤치고,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지음·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3)은 IT 기업, 음식, 환경오염, 교육방식 등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집중력을 공격하는 요소를 분석한다. 정희원 교수의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 2023)에서는 이 문제를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의 양을 쉽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늘리는 일. 이것이 옳고 이런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전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식품 업계가 어떻게 ‘최대한 많이 먹게 만드는’ 설탕과 소금과 지방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는지, 행복과 기쁨을 음식과 연동하여 감정을 조종하는지는 <음식중독>(마이클 모스 지음·연아람 옮김, 민음사,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증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처럼, 고통의 원인을 덮고 저항을 무력화하고자 더 큰 자극과 쾌락을 조장하는 정치적 목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인이 즉각적인 보상으로서의 쾌락을 좇고 자기 돌봄을 도외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시간이 없어서’이다. 가처분 시간이란 몸과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데, ‘렌틸콩 전도사’라는 캐릭터로 통하는 저속 노화 선생님이 결국 가처분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나치게 긴 출퇴근 시간과 과도한 업무량, 긴 노동 시간이 체력과 에너지를 쭉 빼놓는다. 신선한 채소는 비싸고 가공식품은 저렴한 유통 환경이 카운터를, 개인의 식성이나 식습관을 배려하지 않고 유별나다고 낙인찍는 문화가 잽을 먹인다. 시간이 없으니 자기를 돌볼 여유가 없고, 파편화된 쾌락으로 위기를 잠시 틀어막는 데 급급한 것이다. 도파민에 대한 경계와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은 개인을 중독에 빠뜨리는 구조를 직면하고, 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정보의 편향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영역을 조명하여 개인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무한의 쾌락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적절한 제어와 고통이 살아가는 데 필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은 건강과 젊음에 대한 환상이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서곡이기도 하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으면서도 현대인에게 노년의 미래는 언제나 ‘지금 정도의, 가장 젊고 건강한 시기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알츠하이머나 질병, 노화로 근육이 저절로 빠져서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조차 어려운 상황은 철저하게 남의 일이었다. 노인이 되면 조금만 아파도 근육이 빠르게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줄어들어, 병이 나은 뒤에도 자기 힘으로 화장실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늙고 아픈 몸에 대한 배제는, 그 몸이 겪는 경험과 이후의 변화에 대한 정보까지도 차단하는구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가 온 몸처럼 정상성에서 탈락한 몸을 충분히 보고 받아들일 기회가 이토록 부족하구나. 어렸을 때 몸이 쑥쑥 자라나고 하루하루 근육과 장기가 발달하듯,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이제 몸은 쪼그라들고 근육과 장기의 기능은 하향선을 그리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은폐되고 죄악시되었을 뿐이다(노년의 삶은 종종 젊은 날에 대한 징벌처럼 연출되기도 한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에, ‘나’의 몸이 무한대로 지금의 건강 상태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진실을 저속 노화 담론은 발설한다. 다만 그것이 갑작스러운 추락이 아니라 완만한 하강이 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기 돌봄에 집중하자는 것이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의 메시지이다.
물론 도파민을 경계하고 저속 노화를 실천하는 행위에는 노화와 질병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감정도 섞여 있을 것이다. 몸이 취약하게 바뀌는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하지만 나의 유한성을 수용하고, 환경이 개인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생긴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잉여의 쾌락보다는 꼭 필요한 고통 쪽으로 조금은 더 기울어질 수 있다.
1월1일도 지났고, 설날도 지났으며, 이제는 3월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로도 벌써 3번째고, 봄의 문턱이며, 개강 및 개학의 철이기도 하니…이제 진짜 변화의 첫 삽을 뜨라는 압박이 공기 중에도 느껴지는 듯하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일찍 자기, 배달음식 줄이기, 스마트폰 사용시간 줄이기처럼 생활습관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핫’한 표현을 꼽자면 아무래도 ‘도파민’과 ‘저속 노화’(또는 가속 노화, 감속 노화)라는 단어이다. 도파민은 즐거움을 느낄 때 분비되어 소위 ‘쾌락 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는 <도파미네이션>(애나 렘키 지음·김두완 옮김, 흐름출판, 2022)이 출간된 이후 폭넓게 쓰이고 있다. 재미있는 장면이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두고 ‘도파민 터진다’ ‘도파민 구간’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한편 ‘저속 노화’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노년내과 의사이자 노화 연구자인 정희원 교수가 쏘아올린 공으로, 개인을 더 빠르게 나이 들고 병들게 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이 ‘가속 노화’를 늦출 수 있을지 논의하는 담론이다. 정희원 교수는 SNS에서 ‘저속 노화 선생님’ ‘가속 노화 선생님’ ‘감속 노화 선생님’ ‘렌틸콩 전도사’ 등으로 불리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런데 그가 저속 노화의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사실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인다. 단순당 및 정제 탄수화물·초가공 식품·알코올·육류 섭취 제한, 자신의 몸을 이동수단 삼아서 많이 걷기, 충분한 수면…그런데 이 지극히 정석적이다 못해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방식이 새삼스럽게 인기를 끌며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파민이라는 단어의 유행과 저속 노화 열풍은 구체화되는 갈래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문제이다. 현대사회가 쾌락의 과잉을 권장 및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중독에 취약해진 개인은 착취당한다는 것. 고속 성장과 압축적 근대화라는 특수한 맥락이 있는 한국 사회는 근면 성실을 신성시하는 반면 쾌락과 즐거움은 죄악시하는 측면이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거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라는 광고 카피는 당시 신선함과 해방감을 내세우며 크게 히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다양하고 강도 높은 쾌락이 곳곳에 널려 있으며 즐기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온갖 재미있는 영상, 사진, 글, 타인과 즉각 연결되고 국적을 초월한 상품과 음식이 클릭 몇 번만 하면 문 앞에 도착한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우월한 삶인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요즘의 ‘핫플’은 어디이고 지금 OTT 1위 콘텐츠는 무엇인지 같은 정보가 끊임없이 갱신된다. 눈을 뗄 수도, 귀를 쉴 수도 없다. 뒤처지면 놀림받고 도태당한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잠깐만 쉬자 하고 누웠다가 스크롤 쳇바퀴에 빠지면 어느새 4~5시간이 훅 지나가 있었고, 그 뒤에 몰려오는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와 우울감이었다.
음식의 경우, 디저트와 액상과당에 푹 빠져 살았다. 매 시즌 새로운 디저트의 강자가 등장해서 짧게 천하를 쥐었다가 장렬하게 사라지길 반복했다. 대왕 카스텔라, 벌집 아이스크림, 버블티, 마카롱, 약과, 버터바, 탕후루 등의 계보는 내장을 착실하게 설탕에 절였고 시즈닝 치킨, 마라탕, 엽기 떡볶이 등의 맵고 달고 짠 배달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맵고 짠 것을 탐한 뒤 달달한 디저트로 입가심을 하고 나면 다시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시간과 돈을 탕진했으면 행복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딘가 공허한 즐거움의 유효 시간은 너무 짧았다. 더, 더, 더, 갈망하며 허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도파민에 대한 경계와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은개인을 중독에 빠뜨리는 구조를 직시하고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무한의 쾌락은 불가능하며오히려 적절한 제어와 고통이 살아가는 데필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이 새삼스럽게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의지처럼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직시하고 발설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 기기나 쇼트폼 영상, 초가공 식품, 걷기 어려운 도시 환경 등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 쾌락의 이면에 자본주의의 규율을 신성시하는 기업의 이윤 추구가 도사리고 있으며, 전문가들이 치밀하게 ‘고객 유치’의 전술을 기획하고 업데이트한다. 넷플릭스 IT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는 SNS 뒤에서 고객의 정보와 관심사를 장악한 다국적기업의 전략을 파헤치고,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지음·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3)은 IT 기업, 음식, 환경오염, 교육방식 등 전방위적인 측면에서 집중력을 공격하는 요소를 분석한다. 정희원 교수의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 2023)에서는 이 문제를 고통을 최소화하고 쾌락의 양을 쉽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늘리는 일. 이것이 옳고 이런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전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식품 업계가 어떻게 ‘최대한 많이 먹게 만드는’ 설탕과 소금과 지방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는지, 행복과 기쁨을 음식과 연동하여 감정을 조종하는지는 <음식중독>(마이클 모스 지음·연아람 옮김, 민음사, 2023)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증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처럼, 고통의 원인을 덮고 저항을 무력화하고자 더 큰 자극과 쾌락을 조장하는 정치적 목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인이 즉각적인 보상으로서의 쾌락을 좇고 자기 돌봄을 도외시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시간이 없어서’이다. 가처분 시간이란 몸과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데, ‘렌틸콩 전도사’라는 캐릭터로 통하는 저속 노화 선생님이 결국 가처분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지나치게 긴 출퇴근 시간과 과도한 업무량, 긴 노동 시간이 체력과 에너지를 쭉 빼놓는다. 신선한 채소는 비싸고 가공식품은 저렴한 유통 환경이 카운터를, 개인의 식성이나 식습관을 배려하지 않고 유별나다고 낙인찍는 문화가 잽을 먹인다. 시간이 없으니 자기를 돌볼 여유가 없고, 파편화된 쾌락으로 위기를 잠시 틀어막는 데 급급한 것이다. 도파민에 대한 경계와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은 개인을 중독에 빠뜨리는 구조를 직면하고, 윤리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정보의 편향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영역을 조명하여 개인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무한의 쾌락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적절한 제어와 고통이 살아가는 데 필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은 건강과 젊음에 대한 환상이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서곡이기도 하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들으면서도 현대인에게 노년의 미래는 언제나 ‘지금 정도의, 가장 젊고 건강한 시기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알츠하이머나 질병, 노화로 근육이 저절로 빠져서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조차 어려운 상황은 철저하게 남의 일이었다. 노인이 되면 조금만 아파도 근육이 빠르게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줄어들어, 병이 나은 뒤에도 자기 힘으로 화장실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늙고 아픈 몸에 대한 배제는, 그 몸이 겪는 경험과 이후의 변화에 대한 정보까지도 차단하는구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가 온 몸처럼 정상성에서 탈락한 몸을 충분히 보고 받아들일 기회가 이토록 부족하구나. 어렸을 때 몸이 쑥쑥 자라나고 하루하루 근육과 장기가 발달하듯,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이제 몸은 쪼그라들고 근육과 장기의 기능은 하향선을 그리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동안 이상할 정도로 은폐되고 죄악시되었을 뿐이다(노년의 삶은 종종 젊은 날에 대한 징벌처럼 연출되기도 한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에, ‘나’의 몸이 무한대로 지금의 건강 상태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진실을 저속 노화 담론은 발설한다. 다만 그것이 갑작스러운 추락이 아니라 완만한 하강이 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기 돌봄에 집중하자는 것이 도파민과 저속 노화 담론의 메시지이다.
물론 도파민을 경계하고 저속 노화를 실천하는 행위에는 노화와 질병에 대한 혐오와 공포의 감정도 섞여 있을 것이다. 몸이 취약하게 바뀌는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하지만 나의 유한성을 수용하고, 환경이 개인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생긴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잉여의 쾌락보다는 꼭 필요한 고통 쪽으로 조금은 더 기울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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