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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날까 하루하루 불안···특별법에도 변한 게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 첫 사망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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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9 02:17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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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역에서 같이 대책위원회 회의하던 때가 생각나요. 은행에서 되는 건 뭔지, 안 되는 건 뭔지 찾아 와서 알려주곤 했어요. 정말 똑똑한 동생이었거든요.
전세사기 피해자 김병렬씨는 지난 26일 인천 미추홀구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1년 전 세상을 등진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 A씨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A씨는 지난해 2월28일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이후로도 미추홀구 이웃 3명을 더 잃었다. 잇따른 죽음을 계기로 경매가 유예됐고,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김씨를 비롯한 미추홀구 피해자들은 지난 1년간 나아진 것은 없고 오히려 삶은 피폐해졌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사는 미추홀구 B아파트는 1년 전보다 조용해졌다. 총 60세대 전부가 전세사기 피해를 본 이 아파트에는 1년 사이 피해 세대 중 절반만 남았다. 나머지는 경매 절차가 끝나 쫓겨나거나 긴급주거지원을 받아 이사 갔다. 김씨 윗집에 살던 피해자는 지난해 4월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윗집이 키우던 강아지 소리도 안 나고 이사 나간 윗윗집의 갓난아기 소리도 안 들린다라면서 조용하고 외롭다라고 했다.
빈집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3~6개월짜리 단기 월세를 구해 들어온 이들이 채웠다. 이 때문에 아파트에 들어왔다가 금방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고 드는 이들이 늘수록 전세사기의 고통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같은 피해자였기에 나눌 수 있었던 눈빛, 어렵사리 건네던 인사도 점점 사라졌다. 은행에 가선 무얼 해야 하는지, 준비할 서류는 무엇인지 쉴새 없이 정보를 공유하던 주민 단체 채팅방도 조용해졌다. 경매꾼을 막으려 세대별 베란다에 걸어뒀던 현수막은 11개에서 2개로 줄었다.
전세사기 피해를 함께 극복하고자 주민들이 매달 열던 반상회는 더는 열리지 않는다. 피해자 이희진씨(가명)는 피해자들이 너무 지치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단체방에서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나누기보단 혼자 짊어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낯선 이웃과 소통의 장벽이 높아져 공동생활의 피로도도 커졌다. 이씨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흡연 문제, 층간소음까지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라면서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니 매번 어떻게 얘기를 꺼낼지도 난감하다라고 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은 1년이 지나도 줄지 않았다. 피해자 성혜영씨(가명)는 요즘도 법원 경매사이트를 하루 수십 번씩 들락날락한다고 했다. 오는 3월부터 정부가 유예했던 경·공매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씨는 구체적으로 언제 경매가 시작될지는 알 수 없다라면서 경매가 끝날 때까진 계속 경매계에 우리 집이 올라왔는지 확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매 이후 상황도 예측이 어렵다. 성씨는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할 계획이지만 LH가 그 집을 매입할지 확신할 수 없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 9개월 동안 LH가 매입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1채에 불과했다. 성씨는 만일 LH가 매입하더라도 이곳에 계속 살기 위해선 월세를 내야 하고, 월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보증금용 목돈을 4000만원 정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 이후 편의점 투잡을 뛰던 성씨는 건강이 나빠져 일을 잠시 쉬고 있는데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아파트 부실 시공은 불안의 다른 한 축이다.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전세사기 일당의 부실 시공으로 B아파트는 지난해 여름에는 하수구 역류, 겨울에는 동파를 겪었다. 지난 달에도 소화전이 동파돼 1층 출입문으로 물이 넘쳤고, 폐쇄회로(CC)TV 모니터가 고장 나 주민들이 십시일반 수리비를 물어야 했다. 지난해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무너져 내리던 옥상 외벽도 여전했다. 옥상 벽면에 새로 생긴 금을 보던 성씨는 올해는 또 어디가 고장이 나진 않을지, 외벽이 떨어지진 않을지 걱정된다라면서 하루하루 불안하다라고 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이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을까. 피해자들은 (특별법이) 특별하게 지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특별법에 품었던 기대는 은행에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법에 담긴 대환대출, 저리대출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가로막혔다. 성씨는 부채가 많다는 이유로 은행에서 대환대출을 한 차례 거절당한 뒤 끈질기게 다시 신청해야 했다. 김씨는 신용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없다며 대환대출 대상에서 배제됐다.
김씨는 피해자 결정문만 있으면 소득이든 신용등급이든 따지지 않고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면서 피해자 결정문만 받으면 뭐라도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안 된다’는 얘기만 반복해서 들으니 희망 고문을 겪는다라고 했다. 성씨는 준비하라는 서류는 수없이 많고 정작 준비를 해가도 ‘대출금을 떼어먹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써야 했다면서 은행에 가면 도리어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라고 했다.
이들이 지난 1년간 줄기차게 요구해온 ‘선구제 후회수’를 정부와 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사이 사기꾼 남모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항소했고, ‘전세사기는 사인 간 거래’라고 말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인천 계양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김씨는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된 고인이 이 상황을 보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국회가 논의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그냥 예정된 회의니까 여는 것이지, 개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정치인들이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실질적으로 나서서 무얼 했는지 모르겠고 큰 기대는 없다라고 했다.
선구제 후회수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27일 더불어민주당과 다른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지 62일 만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전원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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