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기관 “‘UN 직원 1000명 하마스 연루설’ 확인 못해···이스라엘, 반감으로 왜곡”

미국 정보당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구호 활동을 벌여온 유엔 직원 1000여명이 하마스와 연계돼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이 사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가정보국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지난주 펴낸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쳐온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들이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와 연계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UNRWA 직원 최소 12명이 하마스 기습 공격에 직접 가담했고, 직원 1000명 이상이 하마스와 연계돼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 측 주장이다.
더 나아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지난 16일 UNRWA 전체 직원의 약 12%인 1468명이 하마스 또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이슬라믹지하드와 연계돼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스라엘은 이런 의혹을 제기하며 국제사회에 UNRWA에 대한 지원 중단을 촉구했고, 이에 미국을 필두로 서방 국가들 다수가 지원금을 끊으며 구호 활동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UNRWA는 하마스 공격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은 직원 12명을 해고하고 외부기관의 조사를 받겠다고 자진했고, 유엔은 연루 의혹을 조사할 독립 기구를 출범시켰다. 인스타 팔로우 구매
NIC는 보고서에서 소수의 직원이 하마스 공격에 가담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낮은 신뢰도(low confidence)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낮은 신뢰도’ 평가는 제기된 의혹에 신빙성이 있지만 미 정보기관이 자체적으로 이를 확인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판단의 근거가 된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지 않아 NIC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의 주장이 매우, 매우 신빙성 있다고 밝힌 것에 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다.
반면 NIC는 UNRWA 직원 1000명 이상이 하마스 등 무장단체와 연계돼 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은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NIC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오랜 기간 UNRWA에 반감을 가진 점을 언급하며 이런 반감과 편견 때문에 이스라엘이 사실과 다른 ‘왜곡’을 초래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는 또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상황에서 UNRWA가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하마스와 소통해야 하지만, 이것이 곧 하마스와 ‘협력’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지난주 미 행정부 안에서 회람됐다고 WSJ는 보도했다.
UNRWA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교육, 의료, 주거 등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1949년 설립된 유엔 산하 구호기관으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지에서 난민 구호 활동을 벌여왔다.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UNRWA 직원 1만30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인으로, 이번 전쟁 도중 최소 152명의 직원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숨졌다.
보고서가 언급한 것처럼 UNRWA는 이번 전쟁 이전부터 이스라엘이 ‘눈엣가시’로 여겨온 기관이다. 이스라엘은 UNRWA가 가자지구에서 ‘반이스라엘 선동’을 한다고 비판해 왔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이전부터 이 조직의 해체를 요구해 왔다.
최근 미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의 의혹 제기 이후 지원금 중단으로 UNRWA가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UNRWA가 2월 말까지 약 6500만달러(약 863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며,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직원 3만여명의 3월 급여를 지급할 자금이 없다고 전했다.
현재 가자지구 주민 200만여명은 UNRWA를 비롯한 구호기관에 의존하고 있고, 100만명은 UNRWA의 보호소를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