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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나무 사랑꾼’의 사뭇 진지한 상상, ‘나무가 사람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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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1 00:14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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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수마나 로이 지음 | 남길영·황정하 옮김바다출판사 | 359쪽 | 1만6800원
호주 멜버른시는 2013년 색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7만그루가 넘는 도시의 나무들에 e메일 주소를 하나씩 부여한 것이다. 목적은 나무 보호였다. 당국은 사람들이 ○○○나무의 가지가 위태롭게 늘어졌다는 식의 제보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에게 다른 목적의 편지를 썼다.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고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받은 것이다. 나무는 편지함인 동시에 마음을 달래주는 상담사였다. 그들은 사람이 되었다.
인도의 시인 겸 소설가 수마나 로이는 이 사례를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나무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사람도 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한 질문 같지만 로이는 진지하다. 그는 사람이 아닌 나무가 되고 싶은 인간이다. 그리고 종국엔, 된다.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는 나무를 가운데 놓고 저자가 펼친 온갖 상상의 나래와 탐구, 사유가 총망라된 에세이다. 책은 저자와 그가 사랑하는 나무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의 문학과 사회학, 과학을 넘나든다. ‘나무 덕후’라는 말은 그의 나무 사랑을 표현하기에 얕다.
저자는 끊임없이 상상한다. 초대받은 파티에 나무를 파트너로 데려가 함께 춤을 추면 어떨까? 나무와 결혼한다면 어느 쪽이 상대의 성(姓)을 따라야 할까? 나무와의 관계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의미 없어지지 않나? 나무도 자살이나 순교를 할까? 별나게 보일 뿐인 상상에서 저자는 인간 사회의 묵직한 고민을 뽑아내고 관념을 뒤엎는다. 대담하고 아름답다.
책에는 욕망과 속도, 과잉의 세상에서 벗어나 ‘나무의 시간’을 살아보려는 저자의 노력이 그려진다. 나무의 시간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밤이 오면 쉬고 햇볕이 내리쬐면 꿀꺽 삼킨다.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나무의 시간으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매력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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