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구매 [정우성의 일상과 호사]126년 전부터 전기차에 진심이었던, 심장이 짜릿해지는 그 이름 ‘포르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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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7 16:13 조회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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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구매 전기차는 파괴적 혁신이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 같은 차는 자동차가 이래도 되나 싶은 파격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엔터테이너, 압도적인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최근의 전기차 시장은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고, 뉴스만 보면 아무도 전기차를 사지 않을 것 같지만 큰 틀에서 보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시간과 상황의 문제일 뿐.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도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인스타 팔로워 구매 세계적인 수준의 전기차를 만든다. 중국에서도 세계시장을 겨냥한 전기차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군웅할거의 시대일까? 춘추전국시대라고 해야 할까? 전기차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 번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게 됐다. 너무 많은 시도와 혁신이 물밀듯 몰아치는 시대에는 놀라움이, 그 놀라움 자체만으로 주목받는 경우도 생겼다.
관전 포인트는 비교적 명확했다. 새로움과 파격의 팬덤은 전통이 무너지는 장면들을 보고 싶어했다. 테슬라 모델 S 플레드가 나왔을 때, 그 차의 최고출력이 1020마력에 달할 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2.1초에 불과할 때 소환된 건 포르셰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페라리였다. 미디어는 오랫동안 군림해 온 내연기관의 맹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훨씬 빠른 속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데에 흥분했다. 놀라운 일이긴 한데, 그 비싼 자동차를 마침내 사려는데 가장 중요한 게 속도일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전기차가 빠르게 달리는 건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장르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 내연기관 시대보다 훨씬 쉽다는 뜻이다. 그러니 선택의 문제일 뿐. 속도 자체가 브랜드의 고유함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자동차의 쾌감과 의미를 속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했던 1885년 이후 약 14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떤 자동차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성취의 증거이자 꿈의 일부가 되었다. ‘빠르게 달리는 기계’ 이상의 의미와 문화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포르셰일 것이다. 세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전기차를 출시한 것도 포르셰였다. 2019년. 포르셰가 최초로 만든 순수전기차의 이름은 타이칸이었다. 튀르키예어로 ‘타이(tay)’는 ‘활기 넘치는 젊은 말’이라는 뜻, ‘칸(can)’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늘 그렇듯, 기대를 충족했다는 평과 의외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그중 가장 자극적인 건 역시 ‘포르셰도 어쩔 수 없었다’는 회의였을 것이다. 주행가능거리가 생각보다 짧다거나 내연기관 시대의 포르셰와는 다르다는 평.
‘3대 슈퍼카’ 중 가장 먼저 전기차 출시운동 성능·장거리 주행 다 잡은 타이칸포르셰도 어쩔 수 없었다는 혹평은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소리
1898년 ‘P1’이라는 전기차 탄생시킨‘천재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꿈꾸던 차’ 직접 만든 그의 아들 페리
연내 ‘마칸 EV’ 등 전기차 2종 출시로포르셰 부자의 꿈의 질주는 계속된다
하지만 그건 포르셰를 잘 모르거나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포르셰가 지금의 포르셰이기 전, 페르디난트 포르셰라는 천재 엔지니어의 이름이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를 전문 제작하는 ‘포르셰 엔지니어링 오피스’를 만들었던 건 1931년이었다. ‘포르셰’라는 브랜드로 거듭난 건 1948년이었다. 2023년은 포르셰 창립 75주년이었다. 아직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기차의 역사.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1898년까지 올라가면 우리는 P1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마침내 만날 수 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이자 최초의 전기차다. 지금 보면 거의 마차에 가까운 모습. P1은 최고출력 5마력을 낼 수 있는 전기모터로 뒷바퀴를 굴렸다. 최고속도는 시속 35㎞. 주행가능거리는 약 80㎞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 무게는 약 500㎏이었다. 차체 무게의 3분의 1에 달했다. 전기차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엄청나게 무거웠고, 그 대부분이 배터리의 무게였고, 주행가능거리가 중요했다.
P1은 과연 포르셰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차이기도 했다. 1899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자동차박람회의 부대행사였던 전기차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했다. 약 40㎞에 달하는 코스를 네 명이 타고 달린 결과였다. 거기서 멈출 포르셰 박사가 아니었다. 1900년에는 휠 허브에 모터를 달아 로너 포르셰라는 이름의 순수전기차를 만들었다. 같은 해 파리박람회에 출품했고, 이때의 주행가능거리는 약 50㎞, 최고속도는 시속 37㎞, 무게는 약 1t이었다. 그중 배터리 무게는 410㎏이었다.
성능도 가격도 상당했지만 약 300대가 팔렸다. 경쟁차들의 주행가능거리가 10㎞ 내외에 머무르던 시절, 로너 포르셰는 새로움과 도전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그 자체로 혁신이자 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것도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였다.
포르셰라는 브랜드의 기원이 되었던 한 남자의 의지는 일찌감치 전기모터와 함께였지만 이후 자동차의 역사는 내연기관과 함께였다. 지금의 포르셰가 쌓아 올린 명성도 엔진과 함께였다. 시동을 거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그 동그란 눈을 부라리는 것 같은 소리와 진동. 가속페달에 힘을 주는 강도와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배기음. 마음먹고 속도를 즐기려 달리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혈류가 왜곡되는 것 같은 힘과 가속도의 세계에서 포르셰는 참 오랫동안 꿈과 동의어였다.
내가 꿈꾸는 자동차를 찾지 못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은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아들, 페리 포르셰의 유명한 격언이다. 포르셰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포르셰의 시작이 꿈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어떻게 스포츠카를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페리 포르셰는 내가 운전할 고속 투어링 카를 취미 삼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답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고속 투어링’이라는 말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말 많은 것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일단 속도. 포르셰는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속도를 향한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성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빠르게 달렸으니 안전하게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속도를 줄였다면 어떤 코너 앞에서나 자신감 있게 회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페리 포르셰는 그런 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레이스 트랙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다음은 투어링. 그런 성능을 가진 채 장거리 여행에도 적합하려면? 좀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빠르게 달리려면 오로지 효율만을 위한 차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을 위한 차는 편안하기까지 해야 한다. 여행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때 더 행복한 거니까, 가족이 함께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시장과 엔지니어링의 논리를 생각하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포르셰는 이걸 또 해내고야 만다.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P1으로 이룬 성취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셰가 욕망했던 자동차의 성격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꿈과 아들의 꿈이 놀라운 집요함으로 이어져 자동차를 사랑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꿈으로 완성된 것이 지금의 포르셰다. 포르셰 최초의 순수전기차 타이칸에도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꿈과 페리 포르셰의 집념이 어려있다. 포르셰의 정수인 911의 운동성능을 그대로 간직한 채 트랙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성인 네 명이 편하게 탈 수 있다. 그대로 몇 시간이고 멀리 달려도 편안하다. 인증 주행가능거리는 287㎞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400㎞ 가까이 달릴 수 있다. 지금 살 수 있는 전기차 중, 이렇게까지 완결된 느낌으로 스포츠 성능과 일상성, 장거리 투어러의 가치를 함축한 모델은 포르셰 타이칸이 유일하다.
물성이 사라져도 철학은 남는 법. 포르셰는 지난 1월 두 번째 순수전기차 마칸 EV를, 2월에는 타이칸 페이스리프트를 공개했다. 둘 다 2024년 연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는 어쨌든 마무리될 수순이지만 이미 왔던 길 위에서 묵묵히, 다만 또렷하게 혁신한다. 군웅할거 춘추전국의 전기차 시대에도 포르셰가 꿈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도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인스타 팔로워 구매 세계적인 수준의 전기차를 만든다. 중국에서도 세계시장을 겨냥한 전기차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군웅할거의 시대일까? 춘추전국시대라고 해야 할까? 전기차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 번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게 됐다. 너무 많은 시도와 혁신이 물밀듯 몰아치는 시대에는 놀라움이, 그 놀라움 자체만으로 주목받는 경우도 생겼다.
관전 포인트는 비교적 명확했다. 새로움과 파격의 팬덤은 전통이 무너지는 장면들을 보고 싶어했다. 테슬라 모델 S 플레드가 나왔을 때, 그 차의 최고출력이 1020마력에 달할 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2.1초에 불과할 때 소환된 건 포르셰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페라리였다. 미디어는 오랫동안 군림해 온 내연기관의 맹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훨씬 빠른 속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데에 흥분했다. 놀라운 일이긴 한데, 그 비싼 자동차를 마침내 사려는데 가장 중요한 게 속도일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전기차가 빠르게 달리는 건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장르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 내연기관 시대보다 훨씬 쉽다는 뜻이다. 그러니 선택의 문제일 뿐. 속도 자체가 브랜드의 고유함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자동차의 쾌감과 의미를 속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했던 1885년 이후 약 14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떤 자동차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성취의 증거이자 꿈의 일부가 되었다. ‘빠르게 달리는 기계’ 이상의 의미와 문화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포르셰일 것이다. 세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전기차를 출시한 것도 포르셰였다. 2019년. 포르셰가 최초로 만든 순수전기차의 이름은 타이칸이었다. 튀르키예어로 ‘타이(tay)’는 ‘활기 넘치는 젊은 말’이라는 뜻, ‘칸(can)’은 ‘영혼’이라는 뜻이다. 늘 그렇듯, 기대를 충족했다는 평과 의외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그중 가장 자극적인 건 역시 ‘포르셰도 어쩔 수 없었다’는 회의였을 것이다. 주행가능거리가 생각보다 짧다거나 내연기관 시대의 포르셰와는 다르다는 평.
‘3대 슈퍼카’ 중 가장 먼저 전기차 출시운동 성능·장거리 주행 다 잡은 타이칸포르셰도 어쩔 수 없었다는 혹평은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소리
1898년 ‘P1’이라는 전기차 탄생시킨‘천재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꿈꾸던 차’ 직접 만든 그의 아들 페리
연내 ‘마칸 EV’ 등 전기차 2종 출시로포르셰 부자의 꿈의 질주는 계속된다
하지만 그건 포르셰를 잘 모르거나 충분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소리였다. 포르셰가 지금의 포르셰이기 전, 페르디난트 포르셰라는 천재 엔지니어의 이름이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를 전문 제작하는 ‘포르셰 엔지니어링 오피스’를 만들었던 건 1931년이었다. ‘포르셰’라는 브랜드로 거듭난 건 1948년이었다. 2023년은 포르셰 창립 75주년이었다. 아직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기차의 역사.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1898년까지 올라가면 우리는 P1이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마침내 만날 수 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만든 최초의 자동차이자 최초의 전기차다. 지금 보면 거의 마차에 가까운 모습. P1은 최고출력 5마력을 낼 수 있는 전기모터로 뒷바퀴를 굴렸다. 최고속도는 시속 35㎞. 주행가능거리는 약 80㎞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 무게는 약 500㎏이었다. 차체 무게의 3분의 1에 달했다. 전기차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엄청나게 무거웠고, 그 대부분이 배터리의 무게였고, 주행가능거리가 중요했다.
P1은 과연 포르셰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차이기도 했다. 1899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자동차박람회의 부대행사였던 전기차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했다. 약 40㎞에 달하는 코스를 네 명이 타고 달린 결과였다. 거기서 멈출 포르셰 박사가 아니었다. 1900년에는 휠 허브에 모터를 달아 로너 포르셰라는 이름의 순수전기차를 만들었다. 같은 해 파리박람회에 출품했고, 이때의 주행가능거리는 약 50㎞, 최고속도는 시속 37㎞, 무게는 약 1t이었다. 그중 배터리 무게는 410㎏이었다.
성능도 가격도 상당했지만 약 300대가 팔렸다. 경쟁차들의 주행가능거리가 10㎞ 내외에 머무르던 시절, 로너 포르셰는 새로움과 도전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그 자체로 혁신이자 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최초로 만든 것도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였다.
포르셰라는 브랜드의 기원이 되었던 한 남자의 의지는 일찌감치 전기모터와 함께였지만 이후 자동차의 역사는 내연기관과 함께였다. 지금의 포르셰가 쌓아 올린 명성도 엔진과 함께였다. 시동을 거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그 동그란 눈을 부라리는 것 같은 소리와 진동. 가속페달에 힘을 주는 강도와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배기음. 마음먹고 속도를 즐기려 달리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혈류가 왜곡되는 것 같은 힘과 가속도의 세계에서 포르셰는 참 오랫동안 꿈과 동의어였다.
내가 꿈꾸는 자동차를 찾지 못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은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아들, 페리 포르셰의 유명한 격언이다. 포르셰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포르셰의 시작이 꿈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이후 어떻게 스포츠카를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페리 포르셰는 내가 운전할 고속 투어링 카를 취미 삼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답한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고속 투어링’이라는 말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말 많은 것들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일단 속도. 포르셰는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속도를 향한 인간의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성능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빠르게 달렸으니 안전하게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속도를 줄였다면 어떤 코너 앞에서나 자신감 있게 회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페리 포르셰는 그런 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레이스 트랙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다음은 투어링. 그런 성능을 가진 채 장거리 여행에도 적합하려면? 좀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빠르게 달리려면 오로지 효율만을 위한 차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을 위한 차는 편안하기까지 해야 한다. 여행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때 더 행복한 거니까, 가족이 함께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시장과 엔지니어링의 논리를 생각하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포르셰는 이걸 또 해내고야 만다.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P1으로 이룬 성취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셰가 욕망했던 자동차의 성격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꿈과 아들의 꿈이 놀라운 집요함으로 이어져 자동차를 사랑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꿈으로 완성된 것이 지금의 포르셰다. 포르셰 최초의 순수전기차 타이칸에도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꿈과 페리 포르셰의 집념이 어려있다. 포르셰의 정수인 911의 운동성능을 그대로 간직한 채 트랙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성인 네 명이 편하게 탈 수 있다. 그대로 몇 시간이고 멀리 달려도 편안하다. 인증 주행가능거리는 287㎞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400㎞ 가까이 달릴 수 있다. 지금 살 수 있는 전기차 중, 이렇게까지 완결된 느낌으로 스포츠 성능과 일상성, 장거리 투어러의 가치를 함축한 모델은 포르셰 타이칸이 유일하다.
물성이 사라져도 철학은 남는 법. 포르셰는 지난 1월 두 번째 순수전기차 마칸 EV를, 2월에는 타이칸 페이스리프트를 공개했다. 둘 다 2024년 연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는 어쨌든 마무리될 수순이지만 이미 왔던 길 위에서 묵묵히, 다만 또렷하게 혁신한다. 군웅할거 춘추전국의 전기차 시대에도 포르셰가 꿈의 지위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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