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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한국 정치 향해 ‘이단 옆차기’···난해한데 웃기는 ‘문학계 주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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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6 09:37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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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264쪽 |1만5000원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이없지만 자다가 떠올라 ‘피식’ 웃게 되는 웃음, 김홍 작가의 신간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문학동네)은 그런 웃음이 나오게 하는 책이다. 난해하기도 하지만 웃고 나면 자본주의와 한국 정치를 향해 ‘이단 옆차기’를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학계의 주성치’라는 그의 별명이 딱 들어맞는다. 지난해 말 제29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프라이스 킹!!!>을 두고 소설가 은희경은 현란한 동시에 날렵하며, 어이없고 싱거우면서도 한편 묵직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소설은 절대로 팔 수 없는 것을 절대로 사지 않을 사람에게 팔아내고 아무것도 사들이지 않고서 모든 것을 팔아내는 기괴한 장사꾼 배치 크라우더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일개 노점상인이었던 그는 ‘ㄱ’ 실종 사건으로 전설적 장사꾼으로 등극한다. ‘ㄱ’ 실종사건이란 자음 ㄱ이 모두 사라진 것. 이를테면 ‘계기’를 ‘ㅖㅣ’라 써야 했다. 이 사건으로 나라의 인스타 팔로우 구매 공문서는 물론 서태지 팬클럽까지 동요한다. 서태지의 앨범 <울트라맨이야> 9번 트랙 ‘ㄱ나니’가 ‘ 나니’로 읽힌 것. 서태지 팬클럽은 일본어의 ‘나니’가 아니라고 해명하기까지 이른다.
배치 크라우더는 이 시국에 ‘뭐든 사고팝니다’라는 광고를 내고 ‘ㄱ’을 갖고 있음을 드러낸다. 서태지 팬클럽 회원이었던 재정경제부 사무관은 이 광고를 보고 정부에 보고한다. 배치 크라우더는 해외 교포 자녀에게 흩어져 있던 ‘ㄱ’을 끌어모아 전 국민이 100년 동안 쓰기 넉넉한 ‘ㄱ’을 확보해준다. 배치 크라우더가 전설적 장사꾼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배치 크라우더는 이후 서울 외곽 어느 작은 마을에 모든 것을 팔 것만 같은 ‘킹 프라이스 마트’를 떠들썩하게 개업한다.
‘킹 프라이스 마트’에 유일한 직원이 바로 동네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는 27세 청년 구천구. 구천구는 정치인과 고위 관료를 성공으로 이끈 영험한 무당 엄마 억조창생 여사의 셋째 아들이다. 두 형의 이름은 구이구, 구칠구다. 엄마의 성씨는 무려 ‘억씨’다. 무당 엄마는 모종의 계획을 갖고 아들 구천구를 ‘킹 프라이스 마트’에 취업시킨다. 무당 엄마의 계획은 자신이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것.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신적인’ 물건이 필요했다. 어떤 선거에서든 53% 득표율로 승리하게 해준다는 전설의 성물 ‘베드로의 어구’를 손에 넣어야 했다. 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무엇이든 사고판다’는 배치 크라우더뿐. 구천구는 엄마를 위해 베드로가 153마리 물고기를 낚았다는 낚시 그물을 가져와야 했다. ‘베드로의 어구’는 배치 크라우더만 아는 비밀금고에 있다.
이때 선글라스를 낀 ‘위원회’ 사람이 마트를 찾아온다. 선글라스 사람들은 백종원을 선거에 내보내야겠다고 한다. 승리를 위해 ‘베드로의 어구’가 필요하다는 것. 배치 크라우더는 내어줄 수 없다 했다. 성물을 사용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라는 입장. 결국 위원회는 다른 명목으로 배치 크라우더를 잡아간다. 남은 건 직원 구천구. 구천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선거에서 이기게 해준다는 ‘베드로의 어구’를 찾아 엄마에게 가져갈지, 사장 배치 크라우더를 구하는 데 사용할지 고민에 빠진다.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평범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돈키호테식의 서사에 놀라며 읽어가다보면 <프라이스 킹!!!>은 자본주의와 정치 이야기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블랙코미디임을 알 수 있다. 사고팔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자음 ‘ㄱ’을 제공할 수 있는 장사꾼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자본주의를 비튼다. 선거에서 53%로 신승하게 해준다는 ‘베드로의 어구’도 신박한 설정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또는 어느 평행세계인지 모를 공간에서 진짜 ‘베드로’도 등장한다.
이 소설이 정치를 비트는 클라이맥스는 백종원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면서다. ‘위원회’가 미는 후보 백종원은 서사가 필요하다며 갑자기 실종됐다가 멋지게 재등장하고, ‘새마을식당’의 7분 돼지김치찌개 레시피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막판 공약으로 선거에서 이긴다. 자기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등의 대사라든가 무당이 아예 자신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등 소설은 정치와 예능의 경계가 사라진 씁쓸한 정치 현실을 한없이 비꼰다.
평범하지 않은 설정과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소설은 배치 크라우더와 구천구의 대화에서는 철학서나 자기계발서 분위기도 풍긴다. 엄마와 형들에게 한번도 반기를 들지 않고 순응하며 살았던 구천구는 사장 배치 크라우더를 만나 자신과 세상에 눈을 뜬다. 거절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거절해내지 못하면 필요한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거다 한번 들이받을 생각도 안 하고 평생 그렇게 산거야? 내가 볼 땐 학습된 무력감이야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틀린 일을 하지마 등의 대화는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다. 사장의 조언으로 구천구는 그래도 어떻게 그래 가족인데라며 순응해왔던 세월을 딛고 일어선다. 못되게 굴었던 두 형과 엄마에게 ‘거절’을 하고, 또 그들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형체’로 다시 태어난다.
김홍 작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특한 이름과 설정에 대해 소설을 쓸 때 있는 사람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없는 사람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름부터 많이 생각하는데 억씨 성이 없길래 억조창생이라고 지어봤고, 구천구가 있으면 구이구, 구칠구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와 정치라는 두개의 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정치에 대해선 냉소와 회의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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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간에는 ‘원세훈’도 등장한다. 소설 속 ‘원세훈’은 낚시터에 지나가는 사람, 투표소에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다. 그저 시나리오상 ‘지나가는 사람 1’ 정도로 아무 의미 없이 ‘원세훈’이라는 이름을 쓴 것. 김홍은 동네에 지나가는 캐릭터 느낌으로 조롱하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 말미에는 또 장사의 신이지만 다만 자기 자신까지는 팔아넘기지는 않는 배치 크라우더는 한국을 뒤로하면서 전당포에 담보로 잡혀 있던 스텔스기를 대리로 불러 떠난다. 김홍은 ‘문학계의 주성치’가 맞다.
난해한데 이상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평가가 제일 좋습니다. 읽다보면 ‘엥’ 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너무 현실과 정합성을 따지지 말고, 재미 인스타 팔로우 구매 위주로 따라가다보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질테니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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