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정동칼럼] 이재명, ‘변방의 장수’ 정신을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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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1 23:46 조회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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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이재명은 가진 것 없는 ‘변방의 장수’를 자임하며 여의도로 들어왔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좋은 점이 많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재명은 모든 사안에 명쾌한 입장을 냈고, 무슨 일에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책임윤리를 다한 김대중의 끈질긴 권력의지, 놀랄 만한 용기로 장애물을 돌파한 김영삼의 담대함, 권력 투쟁의 냉정한 현실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김종필의 유장함, 역사의 격랑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노무현의 열정이 다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기동력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판단이야말로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덕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이재명이 사라졌다. ‘변방의 장수’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상 우리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검찰정권’이라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민첩함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정권에서, 권력 분립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이 무력화되고 있고 대통령 권력의 폭주와 일방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임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자제하고 있는 무위(無爲)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전략의 결과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적 부진은 무위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무(無)전략의 결과라서 걱정이다.
강호 무림을 평정했다는 ‘조선 제일의 검’이 알고 보니 선무당의 무능한 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저 무던한 야당이다. 야당의 역할은 반대를 조직하고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무디었고 그의 행동은 더디었다. 이재명과 야당의 무기력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레이스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힘 총선 행보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마냥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이는 진영대결 구조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상호의존 현상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이 바닥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야당도 덩달아 나태해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집요한 검찰의 칼날에 대응하느라 이재명의 진이 다 빠져 무기력화되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이는 지지기반의 중도층 확장 의도 때문에 날렵했던 그의 행보가 굼뜨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재명이 기득권을 지키기에 골몰하느라 변방의 장수 시절에 보여주었던 역동적 리더십을 잊어버린 탓이라고 진단한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어수선한 모습이 최근 위험한 상황까지 와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들리고 있는 공천 과정의 잡음은 느낌이 심상찮다. 이곳저곳에서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 과정에는 뒷말이 없을 수 없겠으나 어떤 얘기는 지나쳐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대표 ‘측’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난맥이 생기고 있다는 경고가 그런 것이다. 우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뒷담화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누가 끝내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데칼코마니, 한국과 대만의 교육문제
이재명은 일지군(一枝軍)을 이끌고 당당하게 여의도로 들어오던 ‘변방의 장수’ 정신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혹여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차지한 자리를 지키는 데 골몰하는 배부른 ‘구들방 장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변방의 장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느 성직자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이가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단한 생애만큼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번듯한 학연, 지연, 정치적 인맥도 없이 늘 변방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그런 사람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밀려난 이들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이재명은 자기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그를 강퍅하게 만들지 않고 인간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거름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의 목숨을 건 단식과 생명을 잃을 뻔한 테러의 위협이 자신을 더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더 큰 세상을 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코로나19가 전방위로 퍼지던 2020년 5월24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전모씨(51)의 일상도 이날을 기점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후 조였던 전씨가 센터로 출근했을 때 작업장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관리자가 직원들을 일렬로 세우고 몇몇 사람을 불러냈다. 누군가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셧다운(시설 전면폐쇄) 안 해도 되느냐’고 묻자 관리자는 구청에서 소독을 끝냈다. 이름 부른 사람은 집에 가서 쉬든지 보건소에서 검사받으라고 했다. 전씨는 그제서야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 2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부천시 보건소가 확진을 통보한 시각은 오전 9시 전후였지만 회사는 이를 일부 노동자에게만 알렸다. 즉각적인 폐쇄 조치도 없었다. 추가 확진자가 있겠다는 생각이 전씨의 머리를 스쳤다. 퇴근 직전 관리자에게 확진자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물었지만 호명되지 않은 분들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답만 들었다.
현실은 달랐다. 이틀 후 전씨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8시간쯤 뒤 남편 A씨(58)와 딸도 확진됐다. 전씨는 가족에게 기저질환이 없고, 미·후각 소실 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잘 이겨낼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바이러스가 폐로 전이됐다는 사실이 정밀 검사에서 확인됐다. 가족들은 격리돼 영상통화로 안부를 물었다. 6월7일 남편의 상황이 좋지 않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전원 통보 4시간 전에도 남편이 영상통화로 ‘나는 괜찮은데 당신과 딸은 괜찮냐’고 물었다라면서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A씨는 ‘급성호흡부전으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전씨는 자신이 코로나 환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감염을 걱정해 통근버스와 탈의실, 외부 식당 등을 이용하지 않았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동선과 장소를 하나씩 지우니 물류센터 냉동창고가 남았다. 전씨는 창문이 없어 전혀 환기가 안 되고, 일하는 사람끼리 어깨가 닿을 정도였다면서 옆에서 일하는 사람도 수시로 바뀌어 누가 누구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다. 당장 병상에 누운 남편을 돌봐야 했다. 남편의 패혈증 증세는 2~4주 간격으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며 전씨의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머리를 밀고, 콧줄을 꿴 남편 모습은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자 얼굴 근육이 변형되면서 입술이 오그라들었다. 딸은 바뀐 아버지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씨는 딸의 면회를 막았다. 그는 남편 목의 가래를 5분마다 한 번씩 빼줘야 하니 거의 잠을 못 잤다. 자책도 많이 했지만 딸 생각과 ‘나마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다. 감염병을 향한 공포와 혐오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전씨는 당시 확진자는 세균처럼 여겨졌다면서 완치 후에도 2021년 이사하기 전까지 낮에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씨는 2021년 3월 ‘쿠팡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냈다. 잠시나마 희망도 있었다. 2022년 6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쿠팡 측이 작업중지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일부 기소’ 의견으로 인천지검에 송치했다. 전씨는 투쟁이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전씨가 낸 민사 소송도 지지부진하다. 가정은 파탄 났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간병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집을 팔았다. 인천에서 경기 안산으로, 안산에서 수서로 월셋집을 옮겨다녔다.
대학 졸업을 앞둔 딸의 인생도 뒤틀려 버렸다. 직장 두 곳에서 면접 요청을 받았지만 코로나 확진으로 가지 못했다. 평소 살갑게 지내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진 것은 마음 속 멍울이 됐다. 딸은 코로나 완치 후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전씨는 딸이 한 달 전까지 우울증약을 복용했다면서 나와 남편은 그렇다 쳐도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마저 이렇게 되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전씨도 2022년 이후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일을 쉬고 있다.
전씨는 4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는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쿠팡에서 걸렸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와 같은 2차 가해성 발언을 법정에서 들어야 했다면서 금방 마무리될 줄 알았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조혜연 쿠팡대책위 활동가는 집단감염 피해자들 일부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고, 주변 시선이 두려워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꺼려 했다면서 그나마 모인 사람들끼리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왔는데 시간이 길어지니 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쿠팡 측은 2020년 5월24일 첫 확진자 발생 뒤 당국과 협의해 방역과 폐쇄 조치를 했으며 다음날 사업장을 전면 폐쇄했다면서 당시 동선을 숨긴 확진자의 역학조사 방해행위로 감염자의 확진 사실이 지연 통보된 것이라고 해명혔다.
그에게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책임윤리를 다한 김대중의 끈질긴 권력의지, 놀랄 만한 용기로 장애물을 돌파한 김영삼의 담대함, 권력 투쟁의 냉정한 현실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김종필의 유장함, 역사의 격랑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노무현의 열정이 다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기동력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판단이야말로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덕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이재명이 사라졌다. ‘변방의 장수’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상 우리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검찰정권’이라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민첩함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정권에서, 권력 분립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이 무력화되고 있고 대통령 권력의 폭주와 일방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임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자제하고 있는 무위(無爲)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전략의 결과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적 부진은 무위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무(無)전략의 결과라서 걱정이다.
강호 무림을 평정했다는 ‘조선 제일의 검’이 알고 보니 선무당의 무능한 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저 무던한 야당이다. 야당의 역할은 반대를 조직하고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무디었고 그의 행동은 더디었다. 이재명과 야당의 무기력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레이스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힘 총선 행보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마냥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이는 진영대결 구조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상호의존 현상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이 바닥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야당도 덩달아 나태해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집요한 검찰의 칼날에 대응하느라 이재명의 진이 다 빠져 무기력화되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이는 지지기반의 중도층 확장 의도 때문에 날렵했던 그의 행보가 굼뜨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재명이 기득권을 지키기에 골몰하느라 변방의 장수 시절에 보여주었던 역동적 리더십을 잊어버린 탓이라고 진단한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어수선한 모습이 최근 위험한 상황까지 와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들리고 있는 공천 과정의 잡음은 느낌이 심상찮다. 이곳저곳에서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 과정에는 뒷말이 없을 수 없겠으나 어떤 얘기는 지나쳐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대표 ‘측’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난맥이 생기고 있다는 경고가 그런 것이다. 우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뒷담화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누가 끝내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데칼코마니, 한국과 대만의 교육문제
이재명은 일지군(一枝軍)을 이끌고 당당하게 여의도로 들어오던 ‘변방의 장수’ 정신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혹여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차지한 자리를 지키는 데 골몰하는 배부른 ‘구들방 장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변방의 장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느 성직자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이가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단한 생애만큼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번듯한 학연, 지연, 정치적 인맥도 없이 늘 변방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그런 사람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밀려난 이들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이재명은 자기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그를 강퍅하게 만들지 않고 인간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거름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의 목숨을 건 단식과 생명을 잃을 뻔한 테러의 위협이 자신을 더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더 큰 세상을 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코로나19가 전방위로 퍼지던 2020년 5월24일. 쿠팡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전모씨(51)의 일상도 이날을 기점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후 조였던 전씨가 센터로 출근했을 때 작업장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관리자가 직원들을 일렬로 세우고 몇몇 사람을 불러냈다. 누군가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데 셧다운(시설 전면폐쇄) 안 해도 되느냐’고 묻자 관리자는 구청에서 소독을 끝냈다. 이름 부른 사람은 집에 가서 쉬든지 보건소에서 검사받으라고 했다. 전씨는 그제서야 물류센터에서 코로나 확진자 2명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
부천시 보건소가 확진을 통보한 시각은 오전 9시 전후였지만 회사는 이를 일부 노동자에게만 알렸다. 즉각적인 폐쇄 조치도 없었다. 추가 확진자가 있겠다는 생각이 전씨의 머리를 스쳤다. 퇴근 직전 관리자에게 확진자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물었지만 호명되지 않은 분들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답만 들었다.
현실은 달랐다. 이틀 후 전씨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8시간쯤 뒤 남편 A씨(58)와 딸도 확진됐다. 전씨는 가족에게 기저질환이 없고, 미·후각 소실 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잘 이겨낼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바이러스가 폐로 전이됐다는 사실이 정밀 검사에서 확인됐다. 가족들은 격리돼 영상통화로 안부를 물었다. 6월7일 남편의 상황이 좋지 않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전원 통보 4시간 전에도 남편이 영상통화로 ‘나는 괜찮은데 당신과 딸은 괜찮냐’고 물었다라면서 믿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A씨는 ‘급성호흡부전으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전씨는 자신이 코로나 환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감염을 걱정해 통근버스와 탈의실, 외부 식당 등을 이용하지 않았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동선과 장소를 하나씩 지우니 물류센터 냉동창고가 남았다. 전씨는 창문이 없어 전혀 환기가 안 되고, 일하는 사람끼리 어깨가 닿을 정도였다면서 옆에서 일하는 사람도 수시로 바뀌어 누가 누구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다. 당장 병상에 누운 남편을 돌봐야 했다. 남편의 패혈증 증세는 2~4주 간격으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했다. 상급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며 전씨의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머리를 밀고, 콧줄을 꿴 남편 모습은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자 얼굴 근육이 변형되면서 입술이 오그라들었다. 딸은 바뀐 아버지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씨는 딸의 면회를 막았다. 그는 남편 목의 가래를 5분마다 한 번씩 빼줘야 하니 거의 잠을 못 잤다. 자책도 많이 했지만 딸 생각과 ‘나마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다. 감염병을 향한 공포와 혐오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전씨는 당시 확진자는 세균처럼 여겨졌다면서 완치 후에도 2021년 이사하기 전까지 낮에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씨는 2021년 3월 ‘쿠팡이 노동자에 대한 안전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냈다. 잠시나마 희망도 있었다. 2022년 6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지청은 쿠팡 측이 작업중지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일부 기소’ 의견으로 인천지검에 송치했다. 전씨는 투쟁이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전씨가 낸 민사 소송도 지지부진하다. 가정은 파탄 났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간병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집을 팔았다. 인천에서 경기 안산으로, 안산에서 수서로 월셋집을 옮겨다녔다.
대학 졸업을 앞둔 딸의 인생도 뒤틀려 버렸다. 직장 두 곳에서 면접 요청을 받았지만 코로나 확진으로 가지 못했다. 평소 살갑게 지내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진 것은 마음 속 멍울이 됐다. 딸은 코로나 완치 후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전씨는 딸이 한 달 전까지 우울증약을 복용했다면서 나와 남편은 그렇다 쳐도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딸마저 이렇게 되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전씨도 2022년 이후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일을 쉬고 있다.
전씨는 4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는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쿠팡에서 걸렸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와 같은 2차 가해성 발언을 법정에서 들어야 했다면서 금방 마무리될 줄 알았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고 밝혔다.
조혜연 쿠팡대책위 활동가는 집단감염 피해자들 일부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고, 주변 시선이 두려워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꺼려 했다면서 그나마 모인 사람들끼리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왔는데 시간이 길어지니 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쿠팡 측은 2020년 5월24일 첫 확진자 발생 뒤 당국과 협의해 방역과 폐쇄 조치를 했으며 다음날 사업장을 전면 폐쇄했다면서 당시 동선을 숨긴 확진자의 역학조사 방해행위로 감염자의 확진 사실이 지연 통보된 것이라고 해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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