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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가 되어 내려다보는 거야”···한국화의 현대화·세계화 이끈 박대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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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2-21 06:10 조회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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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달린다. 깎아내지른 절벽의 가파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예부터 금강산을 그린 산수화는 많았지만, 이렇게 아찔한 높이감을 표현한 그림은 없었다.
내가 새가 되어서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거야. 동양화의 평면적인 시점에서 탈피해 내 나름대로 현대화해서 그린 그림이지. 내가 새가 되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기도 하는 거야. 과거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내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지.
소산 박대성 화백(79)이 그림 ‘현율’(2024) 앞에서 말했다. 박 화백은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2022년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202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 해외 8개 기관에서 순회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관람객이 줄을 설 정도로 뜨거운 인기에 LACMA에서 열린 전시는 두 달 연장됐다. 해외 순회 전시의 인스타 팔로워 성과와 열기를 담은 기념전 ‘소산비경’이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해외에 선보인 작품과 더불어 신작 10점 등 20여점을 볼 수 있다.
같은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지만 ‘금강설경’(2019)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가로 10m에 달하는 그림은 붓에 힘을 줘 금강산 바위의 거친 질감과 성성한 눈발이 느껴지게 그렸다. 박 화백은 글씨를 쓰는 서법을 이용해서 굉장히 힘 있게 그렸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동양 수묵화의 전통 위에 현대미술 기법을 섞어 독창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경주 불국사, 금강산, 한라산, 인왕산, 경복궁 등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을 그리면서도 작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경주에 있는 작업실 정원을 그린 ‘삼릉비경’(2017)엔 커다란 보름달이 정원 안에 성큼 들어서고, ‘만월’(2022)에선 수면 위에 드리운 달빛과 그림자가 역삼각형으로 비쳐 조형미와 여백의 미를 더한다. 경주 남산을 그린 ‘신라몽유도’(2022)는 경주 남산의 모습을 연꽃의 형상으로 표현하며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유물을 그 안에 큰 크기로 그려넣었다. 불교 문화유산이 많은 남산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파격적’ 방법이다.
박 화백은 1994년부터 1년간 뉴욕에서 머물며 현대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어색하게 내 작품을 서구화하고 싶지 않았다. 한 작품에 다양한 기법을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작품을 현대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존 스톰버그 후드미술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 박대성의 필법과 소재·재료는 전통적이나 그의 색채 사용, 작품의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했다.
이번 순회 전시의 큰 성과는 미국에서 펴낸 영문 도록으로 꼽힌다. 가나아트센터는 평론집 형식의 도록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라며 향후 있을 박대성의 해외 활동과 한국화 연구에 좋은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세계적으로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에선 동양화가 홀대받고 있다. 동양화 전공이 폐지되는 대학들이 많은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은 6·25 전란 속에서 네 살 때 아버지와 왼쪽 팔을 잃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학교 밖에서 그림을 익혔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박 화백은 그 고통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그림을 그렸어.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남이 가질 수 없었던 걸 내가 가졌다고 봐. 깊은 고뇌가 있었기에 더 적극적인 삶이 있었다고 보면 돼.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온종일 새로운 작업 생각에 골몰한다는 박 화백은 몸의 몇 배나 될 화선지를 바닥에 깔고 수행하듯 그림을 그린다. 박 화백의 그림이 주는 새로움은 인스타 팔로워 하루하루 수행하듯 이루는 ‘일신우일신’의 작업 속에 나오는 진경인 것이다. 다음달 24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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