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큰 철판에 쌀국수·새우·달걀 넣고 달콤 짭짜름 소스…오늘은 내가 ‘팟타이’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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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훈 작성일24-05-15 09:11 조회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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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기억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한 공기, 바람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달콤하고 알싸하고 매콤하게 지나가는 향기, 익숙한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드럼통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올린 무쇠 웍, 잔뜩 달궈진 팬에 재료를 하나씩 던져 넣을 때마다 빗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지져지는 소리, 그리고 진한 소스가 제대로 배어 있는 국수의 달콤짭짜름한 육각형 맛. 태국 여행길의 야시장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길거리 음식의 추억이다.
오픈 주방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딱 여기에 필요한 생활 근육이 붙은 길거리 주방장이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끝까지 완성해주는 음식. 조리의 모든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봐서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미식 환경. 오감으로 기억돼 스쳐 지나가는 향기처럼, 어느 하나의 조건만 만족하면 본능처럼 맛과 추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예전부터 호쾌하게 넓적한 번철이 갖고 싶었다. 길거리 음식을 대량으로 조리하기에 최적화된, 온갖 소스와 식재료가 날것으로 올라가 엄청나게 수분이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철판은 야시장에서 봐도, 철판요리 전문점에서 봐도, 심지어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아침 식사로 그릴 치즈 샌드위치를 굽는 장면에서 봐도 매력적이다. 프라이팬 하나에 달걀프라이를 하나 부쳐내는 것과는 마음가짐도 스케일도 다르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번철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8인분의 햄버거 패티쯤은 순식간에 구워내야 하지 않을까?
캠핑 솥뚜껑 a.k.a. 그리들
철판이 어디가 좋다는 것인지 의아한 사람이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솥뚜껑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에서는 무쇠 가마솥의 뚜껑을 홀랑 뒤집어 불 위에 걸어 놓고 인스타 팔로워 기름을 둘러 호박전을 몇 소쿠리씩 지져내곤 했다. 요즘에는 그렇게 아궁이와 가마솥을 보고 자란 세대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솥뚜껑에 구운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은 안다.
솥뚜껑을 갖고 싶다면 캠핑 페어에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세상 모든 종류의 솥뚜껑을 보고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솥뚜껑이라는 이름으로 팔지는 않는다. 그리들이다. 묵직하고 온도 유지가 잘되면서 길들여서 써야 하는 무쇠 그리들, 무쇠만큼 고기가 노릇해지지는 않지만 가볍고 코팅이 되어 있는 알루미늄 그리들, 열이 고루 퍼지는 평평한 그리들, 가운데가 깊어서 기름이 고이는 진짜 솥뚜껑처럼 생긴 우묵한 그리들 등 종류도 다양하다.
프라이팬처럼 테두리가 높은 것은 거의 없고 손잡이까지 같은 소재로 되어 있어 철판 하나를 불 위에 대뜸 올려서 요리하는 느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높은 테두리가 없어서 생기는 단점은 가끔 음식을 볶다가 재료를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장점은 뒤집개 쓰기가 편하고 수분이 잘 날아가서 고기와 채소가 제대로 노릇노릇해진다는 것이다. 가장자리에 삼겹살을 두르고 고이는 기름에 파채와 미나리를 볶으면 미각은 행복하고 혈관은 싫어할 것 같은 맛이 완성된다.
아예 이 우묵한 형태를 이용해서 찌개나 라면을 끓이기도 한다. 캠핑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모닥불 위에 올린 이 넓적한 그리들에서 보글보글 끓는 라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만족감을 준다. 다만 안타깝게도 냄비에 끓일 때보다 수분이 많이 날아가고 면이 국물에 푹 잠기지 않아서 사실 국물 라면을 끓이기에 그리들이 이상적인 도구인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발’은 정말 잘 받는데.
철판과 번철에 로망을 가졌던 내가 ‘불꽃에 올린 그리들’이라는 조리 환경을 가장 마음껏 즐기며 만든 음식은 무엇일까? (물론 무엇이든 만들어도 된다. 프라이팬이니까.) 지금까지 본 철판요리와 길거리 음식을 떠올려 보자. 평평한 그리들이라면 푸드 트럭의 셰프처럼 해시브라운과 베이컨, 햄버거 패티를 꾹 눌러서 구워서 바삭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 파리의 노점처럼 크레페를 부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묵한 그리들이라면?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한 대낮 아웃도어 라이프의 온도감을 느낄 수 있는 메뉴를 만든다면? 힌트는 원고의 도입부에 있다. 쌀면이라 삶을 필요도 없이 팬 하나로 완성할 수 있고 나눠 먹으며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볶음면, 팟타이를 만들었다.
캠핑장의 팟타이 노점상
여행은 찰나와 같은 순간이지만, 일상은 현실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여행지에서 맛본 음식을 재현하는 것은 추억 속에 빠질 수 있는 마법이다. 가끔은 여행지에서 ‘이곳을 반드시 기억하고 싶을 때면 어떤 음식을 감각에 새겨 놓는 것이 좋을지’ 찾아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 쨍쨍한 날 캠핑장에서 그리들에 팟타이를 볶는 것은 마치 내가 태국 길거리 노점상의 주방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름부터 ‘타이’가 붙어 있어 태국의 유서 깊은 전통음식인 것 같은 팟타이는 사실 1930년대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태국의 음식을 글로벌하게 널리 알리는 메뉴로도 대활약했으니 성공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팟타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수 한 젓가락 들어 올릴 때마다 그에 묻어나는 자잘한 토핑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크기의 말린 새우, 다진 마늘, 칠리 플레이크, 다진 샬럿, 볶은 달걀, 땅콩과 고수 등이 다채롭게 들어가서 온갖 맛과 색으로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큼직큼직한 왕새우나 부추, 숙주 등이 들어가면 금상첨화다.
다 태웠다고 애태우지 말아요…달큼한 불맛 타오르는 중이니
바삭바삭 입안에서 봄이 부서진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팥양갱 도넛 ~
쌀국수를 물에 불려놓고 재료를 모두 손질해서 세팅해두면 이제 10분 안에 팟타이를 먹을 수 있다. 볶음 요리는 세팅이 중요하다. 너무 많이 익기 전에 다음 재료를 착착 넣고 조리할 수 있도록 오일과 면, 토핑 재료, 소스까지 모두 준비해두고 불을 켜야 한다. 이것이 팟타이 노점상의 프렙(prep)이다.
불 위에 그리들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른 다음 달군다. 말린 새우와 마늘, 샬럿, 칠리 플레이크를 넣고 볶다가 인스타 팔로워 노릇노릇해지면 불린 쌀국수와 소스를 넣는다. 소스와 쌀국수가 잘 섞이면 한쪽으로 밀어놓고 달걀을 넣고 볶는다. 부추와 숙주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접시에 담은 뒤 고수와 땅콩을 뿌리고 웨지로 썬 라임을 곁들여서 내면 끝! 식사 시간이라고 외친 후 조리를 시작해도 다들 둘러앉기 전에 완성된다. 우리가 타고 온 것이 캠핑카가 아닌 태국행 비행기였던가? 한 젓가락마다 지난 휴가의 에피소드가 묻어나고, 다음 캠핑에서 맛으로 떠날 여행지 음식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언젠가 이 캠핑을 맛으로 떠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각에 새긴 기억이 세월만큼 깊어만 간다.
오픈 주방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딱 여기에 필요한 생활 근육이 붙은 길거리 주방장이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 끝까지 완성해주는 음식. 조리의 모든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봐서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미식 환경. 오감으로 기억돼 스쳐 지나가는 향기처럼, 어느 하나의 조건만 만족하면 본능처럼 맛과 추억이 떠오른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예전부터 호쾌하게 넓적한 번철이 갖고 싶었다. 길거리 음식을 대량으로 조리하기에 최적화된, 온갖 소스와 식재료가 날것으로 올라가 엄청나게 수분이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철판은 야시장에서 봐도, 철판요리 전문점에서 봐도, 심지어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아침 식사로 그릴 치즈 샌드위치를 굽는 장면에서 봐도 매력적이다. 프라이팬 하나에 달걀프라이를 하나 부쳐내는 것과는 마음가짐도 스케일도 다르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번철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8인분의 햄버거 패티쯤은 순식간에 구워내야 하지 않을까?
캠핑 솥뚜껑 a.k.a. 그리들
철판이 어디가 좋다는 것인지 의아한 사람이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솥뚜껑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에서는 무쇠 가마솥의 뚜껑을 홀랑 뒤집어 불 위에 걸어 놓고 인스타 팔로워 기름을 둘러 호박전을 몇 소쿠리씩 지져내곤 했다. 요즘에는 그렇게 아궁이와 가마솥을 보고 자란 세대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솥뚜껑에 구운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은 안다.
솥뚜껑을 갖고 싶다면 캠핑 페어에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세상 모든 종류의 솥뚜껑을 보고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솥뚜껑이라는 이름으로 팔지는 않는다. 그리들이다. 묵직하고 온도 유지가 잘되면서 길들여서 써야 하는 무쇠 그리들, 무쇠만큼 고기가 노릇해지지는 않지만 가볍고 코팅이 되어 있는 알루미늄 그리들, 열이 고루 퍼지는 평평한 그리들, 가운데가 깊어서 기름이 고이는 진짜 솥뚜껑처럼 생긴 우묵한 그리들 등 종류도 다양하다.
프라이팬처럼 테두리가 높은 것은 거의 없고 손잡이까지 같은 소재로 되어 있어 철판 하나를 불 위에 대뜸 올려서 요리하는 느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높은 테두리가 없어서 생기는 단점은 가끔 음식을 볶다가 재료를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장점은 뒤집개 쓰기가 편하고 수분이 잘 날아가서 고기와 채소가 제대로 노릇노릇해진다는 것이다. 가장자리에 삼겹살을 두르고 고이는 기름에 파채와 미나리를 볶으면 미각은 행복하고 혈관은 싫어할 것 같은 맛이 완성된다.
아예 이 우묵한 형태를 이용해서 찌개나 라면을 끓이기도 한다. 캠핑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지만 모닥불 위에 올린 이 넓적한 그리들에서 보글보글 끓는 라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만족감을 준다. 다만 안타깝게도 냄비에 끓일 때보다 수분이 많이 날아가고 면이 국물에 푹 잠기지 않아서 사실 국물 라면을 끓이기에 그리들이 이상적인 도구인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발’은 정말 잘 받는데.
철판과 번철에 로망을 가졌던 내가 ‘불꽃에 올린 그리들’이라는 조리 환경을 가장 마음껏 즐기며 만든 음식은 무엇일까? (물론 무엇이든 만들어도 된다. 프라이팬이니까.) 지금까지 본 철판요리와 길거리 음식을 떠올려 보자. 평평한 그리들이라면 푸드 트럭의 셰프처럼 해시브라운과 베이컨, 햄버거 패티를 꾹 눌러서 구워서 바삭바삭하게 만들 수 있다. 파리의 노점처럼 크레페를 부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묵한 그리들이라면?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한 대낮 아웃도어 라이프의 온도감을 느낄 수 있는 메뉴를 만든다면? 힌트는 원고의 도입부에 있다. 쌀면이라 삶을 필요도 없이 팬 하나로 완성할 수 있고 나눠 먹으며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볶음면, 팟타이를 만들었다.
캠핑장의 팟타이 노점상
여행은 찰나와 같은 순간이지만, 일상은 현실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여행지에서 맛본 음식을 재현하는 것은 추억 속에 빠질 수 있는 마법이다. 가끔은 여행지에서 ‘이곳을 반드시 기억하고 싶을 때면 어떤 음식을 감각에 새겨 놓는 것이 좋을지’ 찾아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 쨍쨍한 날 캠핑장에서 그리들에 팟타이를 볶는 것은 마치 내가 태국 길거리 노점상의 주방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름부터 ‘타이’가 붙어 있어 태국의 유서 깊은 전통음식인 것 같은 팟타이는 사실 1930년대에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태국의 음식을 글로벌하게 널리 알리는 메뉴로도 대활약했으니 성공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팟타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수 한 젓가락 들어 올릴 때마다 그에 묻어나는 자잘한 토핑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크기의 말린 새우, 다진 마늘, 칠리 플레이크, 다진 샬럿, 볶은 달걀, 땅콩과 고수 등이 다채롭게 들어가서 온갖 맛과 색으로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큼직큼직한 왕새우나 부추, 숙주 등이 들어가면 금상첨화다.
다 태웠다고 애태우지 말아요…달큼한 불맛 타오르는 중이니
바삭바삭 입안에서 봄이 부서진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팥양갱 도넛 ~
쌀국수를 물에 불려놓고 재료를 모두 손질해서 세팅해두면 이제 10분 안에 팟타이를 먹을 수 있다. 볶음 요리는 세팅이 중요하다. 너무 많이 익기 전에 다음 재료를 착착 넣고 조리할 수 있도록 오일과 면, 토핑 재료, 소스까지 모두 준비해두고 불을 켜야 한다. 이것이 팟타이 노점상의 프렙(prep)이다.
불 위에 그리들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른 다음 달군다. 말린 새우와 마늘, 샬럿, 칠리 플레이크를 넣고 볶다가 인스타 팔로워 노릇노릇해지면 불린 쌀국수와 소스를 넣는다. 소스와 쌀국수가 잘 섞이면 한쪽으로 밀어놓고 달걀을 넣고 볶는다. 부추와 숙주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접시에 담은 뒤 고수와 땅콩을 뿌리고 웨지로 썬 라임을 곁들여서 내면 끝! 식사 시간이라고 외친 후 조리를 시작해도 다들 둘러앉기 전에 완성된다. 우리가 타고 온 것이 캠핑카가 아닌 태국행 비행기였던가? 한 젓가락마다 지난 휴가의 에피소드가 묻어나고, 다음 캠핑에서 맛으로 떠날 여행지 음식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언젠가 이 캠핑을 맛으로 떠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각에 새긴 기억이 세월만큼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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